[살며 사랑하며-문화라] 기억 저 너머의 일



얼마 전 큰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있었던 일이다. 아이는 십 년 전 자신이 초등학생 때 일을 들려주었다. 어느 날 밤,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농구를 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아이는 내게 “이런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농구를 하다니 대단해요”라고 말을 건넸다. 나는 그 말에 “저렇게 해도 농구선수는 될 수 없을 거야”라고 답했다고 했다. 아이는 내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때 일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고 싶었다. 적절하지 않은 대답이었고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기억이라는 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누구도 지나간 일을 모두 기억할 수 없다. 기억은 선택적이다. 때로는 왜곡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하는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감정을 동반한 경우의 기억은 더 오래간다. 좋은 일보다 좋지 않았던 일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면서 많은 일을 겪지만 잊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여행하는 인간’에서 저자는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계속 기억해야 하는 고통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망각이 있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도, 희망을 가지는 일도 가능해진다. 이처럼 망각은 필요하지만 또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데 상대방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한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확한 기억을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최근 읽었던 소설집 ‘숨’의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 보면 언제든지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가상의 디지털 장치인 리멤이 등장한다. 이 장치를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게 된다. 현재 기억장치는 없지만 늦었더라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은 아직까지는 선택할 수 있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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