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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조국 사태, 그래도 배운 건 있다



목적과 수단이 바뀐 조국 사태는 개혁의 본질과 386 정치권력의 개혁작업 수행 능력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든다
진보 내에도 기득권 유지 위해 이익동맹이 작동하고 있어… 진보 기득권도 깨는 게 진정한 진보의 목표 아닌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한 달째 이 나라를 정서적 내전 상태로 몰아넣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국 사태를 대응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방식과 전략이 정서적 내전을 강요한다고 할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데 찬성이냐 반대냐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난다. 무슨 주제로 시작하든 결국 조국과 부인과 딸의 얘기가 중간에 끼어들게 된다. 그가 장관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임명되든 아니든 내전 상태는 내년 총선까지 지속될 것 같다. 내전을 지속시킬 다른 현안이 또 불거질 것이다.

정서적 내전은 우선 개혁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고 뒤죽박죽됐기 때문에 시작됐다.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려는 건 최우선 국정과제 중 하나인 사법개혁 때문이다. 사법개혁 특히 검찰개혁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자리, 즉 장관이라는 수단을 그가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여권과 본인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런데 여러 의혹이 불거진 이후 여권의 조국 옹위론은 마치 장관 임명이 개혁의 목적처럼 돼 버렸다. 그가 장관으로 가면 사법개혁이 완수되는가. 청와대와 여당은 ‘조국 임명 반대=개혁 방해 세력=자유한국당 지지=타도해야 할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을 걸었다.

조국 장관 임명을 위해 목적과 수단을 뒤바꿔 버리는 전략을 택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직후 ‘정부 정책 비판=친일 세력’ 프레임을 작동시킨 것과 똑같다. 단기적으로는 지지층 결집에 효과적인 정치선동 전술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중도층이나 건강한 비판적 지지층을 적대적 영역으로 쫓아내는 어리석음 그 자체다. 모르고 그랬다면 무능이 하늘을 찌르는 일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국정운영이야 어찌되든 386정치권력의 독점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개혁 정책을 적극 지지하지만, 위선과 언행불일치라는 386진보기득권을 비판하는 이들은 꽤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촛불혁명의 든든한 추동력이기도 했다. 건강한 중도층의 지지 철회는 문재인정부 위기의 본질이다. 목적과 수단이 뒤죽박죽됨으로써 일어난 작금의 사태는 이들로 하여금 개혁의 목적이 뭔가, 386정치권력은 과연 개혁을 이끌어 낼 능력이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끔 만든다. 나아가 그들이 제시했던 개혁 어젠다 수행보다는 2000년 이후 공고히 구축돼온 강력한 386이익동맹을 수호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품게 한다.

조 후보자 부인에 대한 수사를 ‘내란 수사’ ‘조직폭력배 일제 소탕’ 등으로 공격하고, 검찰개혁 아이콘으로 자랑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한순간에 적폐대상으로 삼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자기편 수사한다고 기준이 정반대로 바뀐다면 누가 납득하겠나. 남에겐 엄격하고 자기편엔 한없이 관대한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물론 검찰이 오해받을 만한, 그래서 결과적으로 정치행위로 지적받을 만한 행위를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피의사실공표나 기소권 남용에 대해 주어진 권한으로 조사하고 결과를 내놓으면 된다.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수사·기소권으로 역대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해온 개혁 대상이란 건 거의 모든 여론이 동의한다. 이런 기회에도 결국 장관 후보자의 흠결과 검찰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개혁에 실패한다면 386정치권력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386정치권력은 20, 30대 때 가진 것 없이 오로지 명분과 도덕성으로 결국 정권과 싸워 이긴 경험이 있다. 지금과 비교하면 모든 게 허술했던 그 시절, 정치 전술과 선동이 바탕인 투쟁방식을 체질적으로 획득했다. 권력 게임에는 능하다. 조국을 방어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논리는 ‘허수아비 논법(straw-man logic)’을 활용했다. 논쟁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쉬운 가공의 인물로, 또는 상대방 주장을 약점이 많은 주장으로 슬쩍 바꿔 놓은 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허수아비를 두들기는 전략이다. 조국과 가족의 불공정과 위선을 지적했더니 “그렇다면 개혁하지 말자는 거냐” “그러면 너희는 나쁜 기득권 세력”이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내편을 결집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정치 기술이다.

386정치권력의 이익동맹과 권력 내 장기집권은 이번 사태로 물위로 떠올랐다. 예전에 내세웠던 도덕성과 명분을 이젠 잃어버렸다. 무엇보다 국정운영의 무능력이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진보기득권의 위선을 읽었다. 386정치권력의 이익동맹과 사적 네트워크 작동은 그 수명을 다할 때가 됐다. 조국 사태는 우리 정치의 대립이 진보 대 보수의 싸움이라는 단순함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그 안에서 이익을 기반으로 한 기득권이 존재하고,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서로가 이익을 이념으로 위장해 방어막을 친다. 그것을 깨는 것이 진정한 진보라는 걸 많은 이들이 깨닫는다면 그나마 조국 사태에서 배운 건 있는 거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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