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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마강래] 여성 베이비부머가 귀향을 꺼리는 이유



김찬호의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에 소개된 어느 은퇴한 베이비부머의 고백이다. “시간은 많은데 놀 사람이 없어서 그냥 자기 또래의 사람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놀더라고요. 대학 동창, 입사 동기, 퇴사 동기, 초등학교 동창… 서로 밥 한 끼 합시다, 골프 칩시다 하다가도 6개월 지나면 시들해집니다. 사회적 관계망은 급격히 소멸하니까.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급격히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것을 느꼈어요.”

은퇴자의 상황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일부 내용을 그대로 옮겨봤다. 나도 퇴임한 교수님들에게 비슷한 얘기를 종종 듣곤 했다. ‘시간의 과잉’에 당황한 은퇴자가 ‘관계의 빈곤’에 직면하면, 정말이지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젖은 낙엽 증후군’이란 게 있다. 은퇴 후 물에 젖은 낙엽처럼 아내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걸 표현한 것으로,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에서 한때 유행했던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하루 종일 아내를 쫓아다니는 남편을 ‘바둑이’라 부른다. 집 밖에 놀 친구가 없는 바둑이는, 삼식이(세 끼를 집에서 모두 챙겨먹는 남편)가 된다. 하지만 자녀가 장성한 후, 가정을 위해 온 생을 바쳤던 아내에겐 이런 바둑이가 반가울 리 없다. 아내도 생애 처음으로 찾아온, 육아와 가사의 굴레를 벗어날 이 기회를 학수고대해 왔기 때문이다.

여성 베이비부머들의 삶은 희생과 돌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걸 일종의 미덕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들도 젊었을 땐 경제활동을 했다. 하지만 바깥일은 딱 결혼 전, 혹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가능했다. 대다수는 전업주부로 돌아서야 했고, 그렇게 경단녀가 되었다. 한 가정의 엄마로서 부여받은 역할은 식구를 돌보고 자녀를 교육하는 일이었다. 특히 이들은 아이의 교육에 유난히 집착해 ‘치맛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자 형제들의 대학진학을 위해 양보를 강요당한 경험, 그리고 대졸자 형제들의 사회적 성공을 가까이서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면 한시름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우선, 자녀를 다 키우고 나면 노부모가 아프기 시작한다. 노부모를 모시고 병원을 오가거나 집에서 노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여기에 더해, 출가한 자녀가 부모 인근에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아이를 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힘들게 맞벌이를 하고 있는 자녀의 상황을 외면하지 못한다. 마지막 결정타는 남편의 은퇴다. 세 끼에 더해 간식까지 챙겨줘야 하는 바둑이로 변한 남편에게 아내는 좌절한다. 노부모를 돌보고 나면, 손주가 커 중학교에 가고 나면, 이제는 본인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돌보기만 할 것 같은 허망함이 밀려온다.

남편도 섭섭하다. 지난 30년간 바깥일에만 매달려 아내에게 미안해 했다. 이제 단란한 가정을 꿈꾸려는데, 아내는 그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것에 대한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궁지에 몰린 남편도 돌파구가 필요하다. 새 출발, 바로 그거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곤, 아내에게 묻는다. “우리 시골 내려가서 살까?” 당황한 아내는 생각한다. ‘이제 좀 쉬고 싶은데, 시골 가서 농사짓자고?’ ‘정원은 누가 관리하고, 잡초는 누가 뽑나, 집이 춥지는 않을까, 도둑이 들진 않을까….’

그 무엇보다 남편의 제안이 망설여지는 건, 지금까지 의지해 왔던 지인들과 멀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남성은 은퇴를 즈음해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약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성은 그 반대다. 아이를 교육하고 식구를 돌보며, 주변 여성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촘촘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귀농의 꿈에 젖어있는 남편을 향해 터져 나오는 말, “너나 가라, 시골에”. 이것이 최근에 ‘나홀로 귀농’ ‘나홀로 귀촌’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다. 귀농, 귀촌을 촉진하고자 한다면 여성 베이비부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이들이 처한 현실과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고려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홀로 주택보다는 지역 주민들과 섞일 수 있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그리고 도시형 생활편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정주공간에 대한 세심한 정책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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