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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모규엽] 2009년의 기억



2009년 교육부를 출입할 때였다. 당시 정권이 바뀐 뒤라 매일매일 새 정책이 발표됐다. 교육감 직선제,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 입학사정관제, 학업성취도평가 등 하루에도 몇 개씩 굵직한 정책이 쏟아졌다. 그래도 교육감 직선제나 학업성취도평가 등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 입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자가 학력고사 세대인 탓도 있겠지만 너무도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수능부터 원점수와 표준점수에 학교마다 적용 기준이 들쭉날쭉했다. 대입 전형은 머리를 더 괴롭혔다. 특히 수시모집 중 일부는 아예 수능 점수를 반영하지도 않았다. 입학사정관이 면접해 학생의 당락을 결정한다고도 했다. 스펙만 쌓아도 입학이 가능한 전형이 있었다. 주변에선 아이 스펙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 모르겠으니 대입 컨설팅 회사를 소개해 달라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입시에서 어떻게 주관적인 방법으로 학생을 뽑을 수 있을까. 편법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한 번은 교육부 국장에게 “차라리 학력고사 때가 낫지 않느냐”고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고백건대 2년간 교육부를 출입했지만 당시 대입 정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출입처로 옮겼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의혹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번 논란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많은 위정자들이 실제로는 위선자들이다’ ‘상식과 정의가 진영 논리 앞에선 바뀔 수 있다’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10년 전 그때 조 후보자 딸이 수험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너무도 복잡한 입시제도가 이번 사태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 딸이 썼다고 하는 자기소개서와 글을 보면 그의 딸은 지극히 평범하고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생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의 ‘붕어·개구리·가재론’으로 이야기하자면 그의 딸은 충분히 개천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부모가 너무 인위적으로 용을 만들려다 이 사달이 난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 딸은 입시에서 평범한 학생이 가지 않은 길을 갔다. 고교 시절 인턴으로 의학논문 제1저자에 이름을 올렸고, 학회 물리 캠프에서도 상을 따냈다.

이 모든 것을 학생이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아이 진로에 관심이 많은 지체 높으신 부모들이 끼리끼리 고급 정보를 공유하며 열심히 아이의 스펙 관리를 했던 것이 아닐까. 이 때문에 젊은이들은 기회가 균등하지 않고, 공정성도 없다고 푸념한다. 높으신 분들과 평범한 서민은 자식마저도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조 후보자와 딸에게 동정도 간다. 시쳇말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이는데 이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또 우리 사회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부모 손에 이끌려 각종 사회봉사, 대회 등에 끌려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자기소개서에 한 줄 쓰기 위한 것이다.

이런 편법과 정보 격차를 없애기 위해선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고르게 기회가 가는 입시 체제로 바뀌어야 하는 게 순리다. 따라서 대입 전형도 단순화해야 한다. 평가가 주관적이고, 부모 재력과 위치에 따라 편법이 개입될 수 있는 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늘리는 게 우리 사회에서는 맞는다고 본다. 1994년 때처럼 수능을 1년에 2회 이상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게 힘들다면 정부가 더 많은 예산과 인원을 풀어 계층 간 정보 비대칭을 줄여야 한다.

그러면 많은 위정자들이 성적별 줄 세우기와 암기 위주 교육으로 돌아갈 것이냐고 비판할 것이다. 저마다 다른 소질을 가지고 있기에 선진국에선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과 한국은 가치관이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이야기했듯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다양성보다는 평등·공정한 사회를 한국은 추구한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다.

모규엽 사회부 차장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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