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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저를 모르시나요



투둑투둑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어절씨구, 왔구나 왔어! 번개처럼 우산 진열대를 꺼내 놓는다. 오후 5시, 퇴근 무렵 내리는 소낙비는 편의점 점주들에게 하늘이 건네는 상여금이다. 우산을 사 가던 손님이 말한다. “좋으시겠습니다.” 웃으며 답한다. “손님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저희는 1년에 한두 번 맞는 행운이지요.” 그런데 그 손님, 출입문을 나서다 말고 계속 나를 지켜보고 서 있다. 왜 그럴까. 역시 말실수를 한 건가. 아까 그 말이 불쾌했던 걸까. 마음이 불안해진다. 잠시 후 손님이 계산대로 다가와 조용히 묻는다. “혹시 고려중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동창 태희는 그렇게 만났다.

지방에서 태어나, 거기서 학업을 마치고, 지금은 서울 한구석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고향 친구를 손님으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오후 5시에 비가 내릴 확률보다는 분명 희귀할 것이다. 7년간 편의점을 운영하며 그런 일을 세 번 겪었다. 지난겨울 우리 편의점이 있는 건물에 새로운 회사가 입주했다. 그런 날 편의점에는 실내화, 멀티탭, 방향제, 구강용품 등이 갑작스레 팔린다. 평소 먼지 닦아내며 ‘언제 팔리려나’ 걱정했던 아이들이 기쁘게 편의점을 떠난다. 그 손님도 그날 칫솔 사러 온 숱한 손님 가운데 한 명이었다. 낯익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다음에 그 손님이 왔을 때 넌지시 물었다. “혹시 광주에서 살지 않았습니까?” 손님이 내 명찰을 물끄러미 보더니 활짝 웃는다. “아니, 이게 누구야!” 고교 동창 동준이는 또 그렇게 만났다. 태희는 본사에 잠깐 교육받으러 왔던 것이라 했다. 동준이는 오늘도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고는 싱긋 윙크하고 나갔다. 종종 저녁에 만나 삼겹살에 소주 마시며 두런두런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 우리 삶에는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침마다 컵라면 사러 오는 손님은 첫눈에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러나 아는 척할 수 없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탈북자였다. 이런저런 차별이 걱정돼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는 탈북자가 더러 있다. 혹시 그럴 수 있는데 불쑥 ‘너 누구지’하고 물을 수 없었다. 그는 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몇 개월 지나서야 그 손님이 혼자 오기에 “수철아!” 하고 불렀다. 수철이는 “왜 이제야 알아보는 거예요”하고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알고 보니 수철이는 내가 편의점을 하고 있단 사실을 창피하게 생각할까봐 말을 꺼내지 않았고, 일부러 멀리 있는 편의점까지 가기도 했단다. 우린 둘 다 못 말리는 소심쟁이였던 것이다. “수철아, 한국에서 편의점 점주라는 직업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수철이도 말했다. “형,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도 숨길 일이 아니죠.” 그 뒤로 우리는 ‘술동무’가 되었고, 수철이는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편의점에 오다가 얼마 전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매일 아침 찾아오던 그 녀석이 없으니 하루가 온통 허전하다.

편의점은 관계의 폭은 넓지만 깊이는 얕은 곳이다. 하루에도 수백 명 손님을 맞지만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흘려보내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런 ‘군중 속 고독’ 가운데 우리는 종종 인연을 찾는다. 때로 손님에게 용기 내어 묻는다.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나요?”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을 만난 듯 손님이 의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볼 때면 나만의 썰렁한 아재 멘트로 그 위기를 넘긴다. “우리는 ‘대한민국’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렇게 말을 나눈 것도 인연의 시작 아닐까.

봉달호(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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