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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장지영] 혐한에서 치한으로



오랫동안 친분이 있던 일본인 지인이 지난해 페이스북에 이상한 기사를 링크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이 공사 부실로 건물이 기울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지인은 이 글을 링크한 뒤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호텔이었는데 안타깝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일본 포털 사이트 야후재팬을 검색해보니 한국 회사가 엉망으로 공사하는 바람에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이 붕괴하고 있다는 글들이 넘쳐났다. 일부 글은 기사체 형식으로 쓰여 있었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은 설계부터 건물이 최대 52도 기울어진 형태로 최첨단 경사구조 시공법이 적용됐다. 한국 건설사가 일본, 프랑스 등 해외 건설사를 제치고 수주를 따냈다.

그런데 일본 온라인에 비스듬한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의 사진을 건물이 기우는 증거로 내세운 가짜 뉴스가 퍼져 있었던 것이다. 이들 가짜 뉴스에는 한국 건설사들이 워낙 싼값에 수주하기 때문에 부실 공사가 많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나를 비롯해 그 지인의 몇몇 페이스북 친구들이 “가짜 뉴스”라는 댓글을 달았다. 지인은 “내가 가짜 뉴스에 속다니…”라는 글을 남긴 뒤 링크를 삭제했다. 지인은 소위 ‘혐한’ 일본인이 아니다. 주변에 친하게 교류하는 한국인도 적지 않은 데다 기본적으로 진보 성향이기 때문이다. 지인은 가짜 뉴스를 링크한 것을 두고두고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일본의 포털 사이트에는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사례처럼 허위 정보를 토대로 한 혐한 콘텐츠가 넘쳐난다. ‘일본판 일베’ 2채널(2ch·현재 5ch)처럼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한국을 악의적으로 묘사하거나 한국에 대해 잘못 쓰여진 내용이 대부분이다.

혐한으로 잠식된 온라인 상황은 평소 한국에 호의적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이던 사람까지 한국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기 십상이다. 혐한 콘텐츠를 토대로 한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가 끝없이 유통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사실로 믿을 수 있어서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극우보수 매체일수록 ‘온라인 퍼스트’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일본 온라인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케이신문은 온라인이 활성화되기 이전엔 발행부수가 얼마 안 되는 그저 그런 매체였다. 하지만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메이저 신문들이 온라인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것과 달리 산케이신문은 적극적인 온라인 대응책을 취했다. 메이저 신문들이 포털 사이트에 뉴스를 극히 일부만 제공하거나 온라인 유료 구독자만 자사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한 것과 달리 산케이신문은 기사를 모두 무료 제공한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신문 구독률이 높은 편이지만 젊은층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종이신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무료로 접할 수 있는 기사가 바로 혐한을 내세우는 산케이신문 기사인 셈이다. 게다가 혐한 콘텐츠로 수지맞는 장사를 한 산케이신문을 벤치마킹해 ‘다이아몬드’ ‘현대 비즈니스’ ‘JB프레스’ 등 극우 성향 온라인 미디어들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안타깝지만 일본의 젊은층이 극우 성향을 띠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최근 일본 잡지 ‘뉴스포스트 세븐’은 ‘온라인의 한국 소재는 이제 오락인가, 혐한에서 치한(嗤韓·한국 조롱)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7월 초 불화수소 등의 수출 규제 이후 온라인상에서 한국에 대한 뉴스와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상과 특징을 분석했다. 기사에 따르면 과거에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혐한’이었다면 이제는 한국을 무조건 비웃는 ‘치한’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 됐든 온라인상에서 혐한 뉴스를 앞세워 클릭수를 대폭 늘린 웹 미디어가 승자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승자에는 국내 몇몇 보수 성향 신문의 일본어판도 포함됐다.

장지영 국제부 차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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