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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킬링필드’ 후유증 치유한 IJM



1970년대 공산혁명으로 발생했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인구 96%를 차지하던 불교신자들은 ‘업보’ 때문이라며 대학살을 숙명으로 여겼다. 90년대 초반에 내전은 끝났지만, 킬링필드의 후유증은 깊었다. 사람들은 살길이 막막했다. 생존을 위해 내몰린 곳은 성매매업소였다. 특히 아동 성매매 피해가 심각했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 가운데 희망의 빛을 비춘 것은 소수의 크리스천이었다. 기독교 인권단체인 국제정의선교회(IJM)는 2003년부터 13년간 캄보디아 성매매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프놈펜 성매매 업소 밀집지역에서 어린 소녀들의 불법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당시 햄버거 가격은 1달러, 생맥주는 1달러 50센트였다. 성매매는 2~3달러면 가능했다. 캄보디아의 아동 성매매는 법률로 금지돼 있었지만 아무도 제재하지 않았다.

IJM은 캄보디아의 사법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현지 경찰, 사회복지단체와 협력해 성매매 및 마사지 업소, 가라오케 바를 꾸준히 감시했다. 그 결과 5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을 구출했고 현지 검찰은 아동 성매매 사건 140건을 재판에 넘겼다.

이런 노력으로 2003년 캄보디아 성매매 산업의 30%를 차지하던 미성년자 비율은 2015년 2%까지 떨어졌다. 성매매 업소가 있던 자리엔 교회와 청소년 쉼터가 들어섰다. 기독NGO와 크리스천들의 헌신은 캄보디아 사회에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과거 캄보디아에서는 크리스천이 순교를 당하거나 지하로 숨곤 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기독교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

IJM은 1997년 미국의 크리스천 변호사들이 설립한 NGO다.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빈곤층, 그중에서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21세기에도 노예로 팔리는 비참한 상황의 극빈층을 돕는 독특한 단체다. 개발도상국의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이들 국가가 자발적으로 사법체계를 구축해 자정노력에 나설 수 있도록 사법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돕고 있다. 지난 2월 현재 전 세계에서 성폭력과 인신매매 등으로 현대판 노예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40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여전히 할 일이 많은 셈이다.

일반적으로 NGO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활동을 한다. 재난 현장에 긴급구호 물자를 전달하거나 빈곤 국가를 위한 식량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 빈곤층 어린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후원하는 사업, 병원이나 학교를 설립하는 일을 통해 사람들을 돕는다. 구호품을 전달하고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원자들에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IJM 같은 단체는 일하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폭력을 양산하는 구조 속에 들어가 관찰해야 하며 현지 법률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인신매매 피해자를 돕고 구출하는 차원을 넘어 성매매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구조를 바꾼다. 이런 일들은 후원자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IJM 설립자이자 대표인 게리 하우겐이 방한했다. 한국지부가 올 연말쯤 설립된다고 한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하고 투자 대비 효과가 높은 ‘아이템’을 선호하는 교회들이 한국에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교회는 여전히 ‘보이는’ 선교, ‘그림이 되는’ 구호 현장을 더 찾는다.

하우겐 대표가 방한한 이유는 한국 사회와 교회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이 시대 인신매매와 폭력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 성매매 규모는 1년에 177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악한 산업에서 한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고 한다. 하우겐 대표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정의와 폭력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정의는 하나님의 중심 사상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정의를 실천하고 자비를 행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 기독교인들은 가난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고 그들을 폭력의 구조에서 구해내야 한다. 과거 한국도 수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제 은혜를 갚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노예제도를 폐지한 윌리엄 윌버포스와 클라팜 공동체를 기억하는 한국교회 신자들이라면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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