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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이영미]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조국 딸의 입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좌우로는 분류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요즘 지형도를 드러내주는 질문이다. 50대와 20대 진보가 정반대 입장을 말하고, ‘박근혜 탄핵’의 촛불을 들었던 10대가 태극기를 든 60대 보수와 한편으로 묶이기도 한다. 자녀 입시를 겪은 사람과 아닌 시민이 느끼는 분노의 감도도 다르다. 이념의 잣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조국 국면이 불러일으킨 총천연색의 감정이다. 개인적으로는 ①일반고에 다니는 수험생 자녀를 둔 ②40대 맞벌이 엄마이자 ③포스트 386세대로 분류되는 ④24년차 직장인의 정체성이 조국 사태에 대한 입장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내가 서 있는 정치적 좌표를 난생 처음 실시간으로 확인한 기분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게 지난 9일이다. “국가 전복을 꿈꿨던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앉힐 수 없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에 연루됐던 조 후보자의 과거를 거론했을 때만 해도 심드렁했다. 한국당이니 할 법한 얘기라고 여겼다. 그 사이 조 후보자 아들의 이중국적·병역기피 의혹과 아파트 투기 의혹에 이어 74억원 사모펀드, 웅동학원을 둘러싼 채권소송이 폭로됐다. 개인적 관심이 시작된 건 이 지점이었다. 위장이혼과 위장매매가 과도한 주장이더라도, 한 가족이 200억원대 빚의 채권자이자 동시에 채무자가 되는 건 정말 이상한 시추에이션 아닌가.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 거 설명하라고 있는 게 국회 인사청문회니까. 청문회에서 해명이 안 된다면? 비난은 그때 해도 늦지 않았다.

마지막 한방은 딸의 입시문제였다. 단국대 의대 2주 인턴 후 논문, 부산대 의전원 낙제 후 장학금,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징검다리 장학금. 3대 핵폭탄이었다. 20대들이 폭발했다. 온라인을 떠도는 청년의 글을 읽으면서, 40대 시선으로는 그들의 좌절과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절감했다. 대입에 수시전형이 막 도입된 2009년 무렵 현재 수준의 감시조차 없었던 각자도생의 스펙 쌓기 경쟁 속에서 조 후보자 딸의 인턴 논문은 불법 축에도 끼지 못했을 거다. 2주 인턴에 SCI급 논문 제1저자라니.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코미디를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제도가 권장하고 부추겼다. 조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생각하면 그들 가족의 행태는 위선적이다. 그렇다고 조 후보자가 마치 뒷골목을 헤매며 검은돈으로 대학 입학증을 사들인 양 말할 수도 없다. 수십억원 자산가의 딸이 의전원 재수를 위해 대학원에 적을 두면서 장학금까지 타가는 건 너무 얄밉다. 하지만 장학금 선정 과정의 부정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도둑질이라도 한 양 난도질부터 하는 게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계속 머뭇거리게 된다. 386세대의 퇴장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아직 그들에게 희망을 둔 세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경험치의 한계 속에서 솔직히 그렇다. 나는 386세대가 물러나기를 바랐지, 자신들이 이룬 모든 것과 함께 폭파되기를 원한 건 아니다. 386세대의 잔해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다시 5·18이 폭동인지 아닌지 되묻고, 세월호 유족을 모욕하는 게 몇 개월의 징계감인지 논쟁하게 되는 걸까. 대체 앞으로 나가기는 하는 걸까. 무엇보다 이 시끄러운 정치적 소극이, 모두가 배신당했다는 냉소로 끝나는 걸 원치 않는다. 다행히 26일 국회 청문회 일정이 합의됐다. 조국 후보자는 이틀간 자기를 해명할 기회를 충분히 갖기 바란다. 그 자리에서 우리 시대 ‘진보의 아이콘’이 제 몸에 묻은 오물을 잘 털고 주워담은 뒤 떠나주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주인공 조국이 이 지저분한 ‘조국 스캔들’의 막을 내리고 조용히 퇴장해 주기를. 조국은 다시 ‘개인’ 조국으로 돌아가고 우리 앞에는 깨끗한 빈자리가 남기를. 이게 지금 품은 딱 1인분의 소망이다.

이영미 온라인뉴스 부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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