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뉴스룸에서-김준엽] 불매운동 성공의 전제조건



평소 문재인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던 한 지인에게서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가족들과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뒤져봐도 일본 만한 여행지가 없는 거 같다”는 이유에서다. 일본만큼 가깝고, 안전하면서도 만족도 높은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4세 남자아이를 키우는 다른 지인은 “유니클로 불매운동을 하니 아이 옷을 사기가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아이 옷으로 유니클로만큼 저렴하게 사서 편하게 입힐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일본 불매운동이 두 달 지나면서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남에게 알리지 않고 일본에 가거나 일본 제품을 조용히 사는 ‘샤이 재팬’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목적을 가지고 하는 불매운동은 초반에는 강력한 힘이 있지만, 휘발성이 강해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제품을 우리나라 시장에서 완전히 없애는 게 목표라면 불매운동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선 단호한 의지보단 확실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한때 우리나라 부엌을 장악했던 일본 ‘코끼리밥솥’이 사라진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코끼리밥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주부들의 ‘잇템’이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시절이라 쉽게 구할 수 없었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코끼리밥솥이 사라진 건 국산 제품의 품질이 좋아지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코끼리밥솥을 흉내 내는 수준이었지만 노하우가 쌓이면서 90년대 후반부터는 소비자들이 한국 제품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쿠쿠, 쿠첸 등 국내 업체들이 만드는 전기밥솥은 이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관광을 하고 꼭 사가는 물건이 될 정도로 인기다. 마치 우리가 코끼리밥솥을 사던 80년대를 보는 것 같다. TV나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브라운관 TV 시절만 해도 소니를 필두로 한 일본 제품이 고급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TV 시장에서 세계 1, 2위에 오른 지금 일본 TV는 한국에서 판매도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국내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피처폰 시절에는 모토로라, 노키아 등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국내 두 업체가 8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외산 휴대전화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니는 사실상 한국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접은 상태다.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는 유난히 애국 마케팅에 나서는 기업들이 많이 보였다. 일본과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보다 좋은 마케팅 도구도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한두 번이야 동참한다고 해도 제품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신념과 이익이 충돌했을 때 어느 쪽이 우선한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긴 어렵다. 하지만 시장의 선택은 언제나 합리적인 쪽으로 수렴해가기 마련이다. 일본 불매운동의 열기는 우리나라 기업들엔 경쟁력을 키울 좋은 기회다. 일본 제품에 밀려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우리나라 브랜드가 주목받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으려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매진해야 한다. 경쟁력을 높이는 게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오랜 기간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소비자에게 선택받기까지 인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외국 유명 제품을 적당히 참고해 쉽게 만들려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머지않은 시간에 우리나라 SPA 브랜드가 유니클로 대체재가 아니라 더 좋아서 선택받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문구류가 일본 제품보다 품질이 좋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 국내 여행이 일본 여행보다 만족도가 높아지면 좋겠다. 그래야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일본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