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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이남주] 한·일 갈등과 한·미 동맹



문재인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종료 결정이 여러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이 결정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주요 쟁점이 됐다. 미국 정부는 처음에는 한·일이 이견 해소를 위해 신속히 협력하기 바란다는 중립적 반응을 내놓았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문재인정부의 결정에 실망했다는, 결이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한·일 갈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한·미 동맹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등장했다.

그러나 지소미아 종료가 한국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우리가 일본에게서 얻는 정보보다 일본이 우리에게서 얻는 정보가 더 많았다. 또 지소미아 종료로 한·미·일 사이에 정보 교류의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는 것도 아니다. 2016년 11월 우리 정부가 이 협정을 체결했던 것은 미국이 강하게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라는 자신의 중장기적 이익을 위해 한·미·일 사이의 군사협력을 원활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이 점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이해한다는 식의 설명을 내놓은 것은 성급했다. 미국이 초기의 신중한 입장을 빠르게 변경한 중요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의 선택지에 지소미아 종료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인지하고는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 모두 친구라며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놓은 이후, 이 사태가 한·미 동맹의 균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다소 가라앉고 있다.

그렇다고 갈등요소가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점이 어려운 과제다. 일본이 한·일 갈등에 과거와 달리 수출규제와 같이 무리한 방식을 동원한 것은 동북아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일본의 조치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에서 지소미아 종료보다 더 광범하고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야 하는 미국에는 한국보다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략 환경의 변화를 활용해 동북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라는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치대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한국을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위치 지우려는 본격적인 시도에 나서고 있다.

이런 일본의 시도에 미국이 조정자로 나서지 못하는 것 자체가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이 자신의 전쟁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한·일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첩경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략적 필요에 따라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겨 왔다. 이것이 그동안 한·일 관계를 어렵게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일본이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 위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려고 시도한다면 한국이 뒤로 물러서기만 할 수는 없다. 한·일 갈등에 대한 우리 결정에 대해 미국이 불만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불만을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동맹이라고 모든 사안에 같은 입장을 가질 수는 없다. 개별 사안에 대해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더 높은 전략적 목표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지속가능한 동맹이다. 한·미 동맹도 이런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의 유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당분간은 미국이 한·일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이로부터 발생되는 여러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개별 사안을 둘러싼 마찰과 갈등을 안보 상황 전체의 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되면 우리 외교가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정부도 임기응변식으로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불식시킬 수 있는 장기적 전략과 비전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남주(성공회대 교수·중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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