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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김나래] 국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몰랐을 거다. 사람들이 그가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최순실과 자신을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비난할 줄은. 평생 살면서 나쁜 마음 품은 적 없고, 대놓고 법을 어긴 적도 없었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법적 문제가 있는 것과 무리한 추측성 의혹 제기가 마구 섞여 있는 게 사실이다. 자유한국당의 ‘아니면 말고’식 문제 제기에서 조 후보자 일가에 다소 폭력적인 행태도 보인다. 그럼에도 조 후보자의 잘못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한 마디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죄’라 말하고 싶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어온 그의 삶이나 그가 보여줄 개혁은 무언가 다를 줄 알았는데, 기존의 기득권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건, 뭐니 뭐니 해도 그의 딸 문제다. 그가 저서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이가 한국 학교의 경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다가 외국어고등학교 국제반에 입학했기에 자식을 외국에 보내는 사람들의 결정을 쉽게 비난하지 못한다”는 대목을 읽으며 의아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치열한 입시 경쟁.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조 후보자는 그의 딸이 모두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게임의 규칙이 싫어서, 게임장에 입장하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한 것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조 후보자는 몰랐던 것 같다. 경쟁이 싫다고 스스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고가의 사립고교 등록금을 내고, 다양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그럴싸한 이력을 만드는 길을 자녀에게 열어줄 수 있는 부모가 그의 주변엔 많았을지 모르지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그렇게 선택한 길에서 규칙을 어기거나 법을 어긴 적 없고, 그래서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하는 그의 해명이 도저히 성난 국민의 마음을 달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조 후보자만큼이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모르는 것 같다. 지금 이 민심의 이반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그동안 여당 의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존재감 없는 모습이었다. 역대 정부 여당의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보다 이렇게 낮은 적은 없었다고 하던데. 그 사실이 여당 의원들을 대통령의 지지율 뒤에 숨어 숨죽이고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데 급급하게 만들었던 걸까. 더구나 상대는 역대 최악이라는 형편없고 지지부진한 야당이다. 겉으론 겸손한 듯하나 내심 내년 총선 결과에 대한 여당의 은근한 자신감 기저엔 “아무리 그래도 촛불을 들었던 민심이 어떻게 한국당을 다시 찍겠어”와 같은 생각이 깔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 후보자의 각종 의혹이 쏟아지는 동안 문재인정부의 지지 근간인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와 희망이 어떻게 허물어지고 있는지를 못 볼 수 있을까. 참으로 놀랍게도 이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아이콘,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권의 상징이던 조 후보자로 인해 그 미묘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여당은 청문회에서 조 후보자가 직접 설명하면 다 해소될 거라고, 지금 쏟아지는 의혹들은 가짜뉴스이며, 보수 야당의 국면 전환용, 정권 흔들기일 것이라는 반응은 더 당혹스러울 뿐이다. 여당은 당장 내년 총선 결과만 걱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불법적인 특혜와 부당한 특권에 분노하고, 이놈 저놈 다 똑같다는, 정치는 다 그렇다는 그 성난 민심을 어찌하면 좋을까. 믿었던 이들로부터의 배신이기에 국민의 마음이 더 아프게 참담하다. 그래서 더 수습하기가,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은 건 아닐지.

조 후보자와 여당,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문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국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라. 길이 보일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길이다. 국민이 제게 준 가르침입니다. 국민의 뜻에서 대통령의 길을 찾겠습니다.” 문 대통령이 과거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며 현실 정치에 뛰어들며 내놓은 책 ‘사람이 먼저다’에서 했던 말이다.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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