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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세욱] 90대 동호인보다 못한 체육계



18일 폐막한 2019 광주 세계마스터즈수영선수권대회는 수영동호인 6000여명이 참여해 기량을 뽐냈다. 지난달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2부 격인데 전문 선수들이 아님에도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쏟아졌다.

인상적인 것은 출전 선수들의 연령이다. 동호인이라 해도 경기에 뛰어야 하는 만큼 나이대가 많아야 중년 정도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60대가 564명, 70대가 297명이나 됐다. 90대도 4명이 참가했다.

지난 13일 여자 자유형 100m에 출전한 일본의 아마노 도시코씨는 93세로 대회 최고령 선수다. 휠체어를 타고 입장해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4분28초06의 기록으로 완영에 성공했다. 최악의 한·일 관계에도 아마노 할머니의 역영에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91세인 불가리아의 테네프 탄초씨는 지난 14일 3m 높이의 다이빙대 위에 섰다. 그리고 뒤로 한바퀴 도는 멋진 자세로 입수했다. 다이빙 도전에 대해 “욕망을 이루기 위해 왔다. 욕망이 없으면 목표에 다다를 수도, 삶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의지 앞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일반인들도 스포츠에 대한 마음가짐이 이토록 진지하건만 국내 전문 체육인들과 단체의 일부 행태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한 탁구선수가 수년 전 뺑소니 사고를 낸 뒤에도 국가대표에 뽑혀 아시안게임에서 메달까지 땄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더 가관인 것은 해당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승부조작 혜택을 입었다는 의혹이다. 뺑소니와 승부조작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성적에 눈이 멀어 선수나 소속팀, 협회 등이 스포츠 순수성을 훼손한 것이다. 뒤늦게 내부고발에 의해 지난 13일 이 선수에 대한 자격정지가 확정됐지만 뒷북 대책일 뿐이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5명은 6월 27일 선수촌에서 합숙 도중 술을 마시다 적발됐다. 불과 이틀 전 쇼트트랙 남녀 대표팀 전원이 성희롱 파문으로 선수촌에서 퇴촌 당했음에도 정신을 못 차렸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지난 8일 이들에게 자격정지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하나마나한 처벌이란 지적이 잇따르자 연맹의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가 뒤늦게 6개월 추가징계로 수위를 높였다.

메이저리그 팀에서 방출된 오승환은 지난 6일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오승환은 4년 전 해외 불법도박 연루에 따른 출장 정지 징계로 올해 국내 리그에서 뛸 수 없다. 그럼에도 삼성은 오승환에게 올해 3억원의 연봉(실수령액)을 안겼다. 도박, 약물 복용 등으로 물의를 빚은 현역 선수만 모아도 팀 하나는 만들 수 있을 만큼 프로야구의 모럴 해저드는 심각하다.

체육계는 최근 정부 주도의 엘리트 체육 혁신안에 대해 ‘현장 여론을 외면한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정작 체육계가 외면해온 것은 일부 선수들의 스포츠 정신 훼손이었다. 언제부턴가 엘리트 스포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채 목표를 달성하고 인맥과 꼼수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장이 돼버린 모양새다. 90대 노인들조차 공정한 룰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 정신을 발휘하는 마당에 새파랗게 젊은 스타들의 자만과 타락은 씁쓸함을 안긴다.

박태하 전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는 2015년 중국 프로축구 연변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전년도 2부리그 꼴찌팀을 단숨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에 중국 각지에 흩어진 조선족들이 축구를 매개로 모이고, 한국어·민족 등 뿌리에 대한 자각이 높아졌다. 축구가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연변은 증명했다(‘박태하와 연변축구 4년의 기적’).

이처럼 꿈과 희망을 주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스포츠가 국내에서는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답은 나와 있다. 스포츠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신상태가 흐트러진 엘리트 선수들이 올림픽, 월드컵을 외쳐봐야 공허할 뿐이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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