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탈북 母子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미래 희망 찾아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태국 거쳐 한국 왔으나
결국 餓死한 기구한 삶… 떠올리면 가슴이 저민다
文정부, 남북통일 바란다면 탈북민 무시하지 말고 따뜻하게 챙겨주기를


지난주 여야가 한목소리로 애도를 표한 적이 있었다. 서울시내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지 두 달 만에 발견된 탈북민 모자(母子)를 향해서였다. 42세 어머니 한씨와 6세 아들 김군의 죽음은 충격적이다. 배가 고파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온 그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나다니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모자의 아파트에 먹을 거라곤 고춧가루뿐이었고, 통장 잔고가 0원이었다는 사실은 말문을 막았다. 한씨는 주민센터를 찾아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중국에 가서 이혼 서류를 떼 오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 푼도 없는 처지인데, 황당했을 것이다. 삶의 의욕도 잃었을 듯하다. 북한과 중국, 태국, 한국을 오가야 했던 고단한 삶을 고통 속에 마감한 모자가 하늘나라에선 환하게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원한다.

큰 슬픔을 안긴 모자의 비극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첫 번째는 탈북민들의 실태다. 3만명을 훌쩍 넘어선 탈북민들의 생활 여건은 점차 개선돼가는 추세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각지대에서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게 새삼 확인됐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거나,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공과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하다. 인적 네트워크는 변변찮다. 숨진 한씨처럼 홀로 아이를 키우는 탈북 여성들 사정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

탈북민 정책을 촘촘하게 가다듬어야 마땅하다. 뒤늦게 정부가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기대난망이다. 탈북민을 대하는 정부의 냉랭한 자세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7월, 탈북민 정착을 돕는 통일부 소속 교육기관인 하나원 설립 20주년 행사다. 통일부 장관이나 차관이 참석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불참했다. 취재까지 막았다. 현직은 물론 전직 통일부 장관들까지 자리를 함께해 축하하고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했던 이전 정부 당시 행사와는 딴판이었다.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서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하나원을 건립한 때가 대북 햇볕정책의 원조인 김대중정부 시절이었다는 점을 알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모자를 위해 탈북민들이 광화문 인근에 세운 분향소를 찾은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없다. 장례식이나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 이럴까. 탈북민들을 겨냥해 ‘역적배’ ‘변절자’라고 비난을 퍼붓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탈북단체에 대한 지원도 끊고 있다. 이러니 어느 공무원이 책임감을 갖고 정성을 다해 탈북민을 대하겠는가.

그 여파인지 사회 일각에서도 대놓고 탈북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는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에게 “민족의 배신자인 주제에 어디서 이래라 저래라 떠들고 다니느냐”고 위협하질 않나, 잘 지내고 있는 탈북민들을 북송하자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탈북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상대로 한 협박도 종종 벌어진다. 탈북민들이 주도하는 북한 인권운동 단체들에 대한 기업 및 개인 후원은 급감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탈북민 사회가 와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정부가 탈북민들의 북한 비판을 막기 위해 온갖 압력을 가했다’는 미국 국무부의 ‘2018년 국가별 인권 보고서’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탈북민들 사이에선 원망과 함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태영호 전 공사는 이렇게 말한다. “같은 탈북민으로서 그(모자)의 어려운 처지를 미리 알고 어루만져줄 수는 없었는지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 한국 정부와 탈북민들의 반목은 북한 정권이 원하는 것인 만큼 정부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나서서 탈북민 정착 실태의 미흡한 점을 재점검하자.” 왠지, 가슴이 뭉클하고 미안한 마음이 더 든다.

탈북민들은 ‘먼저 온 통일 자산’ ‘통일의 징검다리’ ‘통일의 전도사’ 등의 별칭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통일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강조한다. 통일이 언제 될지 모르겠지만, 탈북민들을 찬밥 취급하는 게 통일에 도움이 될까. 아닐 것이다. 김정은은 콧방귀만 뀌고 있고, 탈북민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탈북민이 끊이지 않는 건 북한 정권의 폭정 때문이다. 때마침 탈북민 김규민 감독이 만든 북한 인권 영화 ‘사랑의 선물’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15일 개봉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북한 상이군인의 아내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식을 위해 몸을 팔고 빚을 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국 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외국에선 호평을 받았으나 국내에선 “분위기 파악이 그렇게 안 되느냐”는 냉대를 받다가 일부 시민들의 상영 요청이 잇따르자 뒤늦게 상영이 결정됐다고 한다. 상영관은 몇 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부 개봉관은 첫날 매진을 기록했다. 이 영화, 봐야 할 것 같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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