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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진창수] 붕괴하는 동북아 질서



도널드 트럼프 현상은 국제관계뿐만 아니라 각국의 국내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 관계를 중시하는 각국 정상들은 독자적인 정치적 계산에서 트럼프와의 친밀한 우호 관계를 강조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베 총리이고, 시진핑 주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트럼프와의 개인적 관계야말로 곧 국익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각국 정상들은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로 시련을 맞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트럼프가 만든 국제환경을 핑계 삼아 내셔널리즘과 포퓰리즘을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졌다. 즉 소외감을 품어 왔던 유권자층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각국 정상들에게 트럼프 현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더욱이 독재 국가들은 트럼프와의 톱다운 방식의 외교를 선호하면서 독재자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인권 침해 등을 간과하는 트럼프가 고맙기도 하다. 북한의 김정은과 트럼프의 관계가 그 예이다. 김정은이 계속 미사일을 쏘고 동북아 질서의 불안정을 확산시키는데도 트럼프는 서로의 관계는 좋다고만 한다. 미사일 발사를 작은 일로 치부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김정은은 물 만난 고기마냥 한국을 무시하고 비난하면서 도발을 정당화하는 형국이 되었다. 트럼프로 상징되는 정치 스타일이야말로 국제사회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을 확산시키는 배경이다.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 현상이 결국 민주주의를 쇠퇴시키면서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으로 인해 국제관계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후 국제질서는 민주주의와 자유경제 질서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등장 이후 기존 국제질서는 점차 붕괴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질서에도 그 여파는 확연히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국제 관계 룰이나, 동맹의 가치관을 공격하면서, 동북아 국가들의 각자도생 몸부림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은 어떻게 기존의 질서를 탈피할 수 있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안전보장 질서는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한·일 관계의 대립, 독도 부근 러시아 군항기의 침범, 홍콩 사태 그리고 북한의 연이은 도발 등은 지역 안보질서의 붕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결국 기존의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던 동아시아의 ‘키신저 체제’는 기능을 하지 못한 채 각국이 국익만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그리고 아베 총리가 어설픈 트럼프 흉내를 내면서 동북아 질서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계화 진전으로 경제의 상호의존도 깊어져 동아시아에서는 스트롱맨의 국익 중심 정치가 우선되었다. 문제는 동북아 질서에서 미국 역할이 쇠퇴하고, 그럼에도 각국이 중국의 패권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현재로서는 미국에 대한 동맹의 부담과 중국에 대한 불안이 동아시아 질서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면서 각국의 대립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외교정책이 방향을 잡기는 쉽지 않다. 한국이 해야 할 전략은 남북 관계를 안정화하고, 동북아 질서를 평화와 번영으로 이끌어내는 것임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이 원하는 질서를 만들려면 대립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고,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이라도 외교가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우리의 동북아 외교는 예방외교보다는 대립 격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외교는 갈등 완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새겨야 한다. 그리고 한국 외교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동북아 질서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세우면서 외교의 담론을 주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이념적 확신과 장밋빛 미래만을 바라봐서는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갈 수 없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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