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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김경택] 해녀의 노래



“우리 어멍(어머니) 나를 낳은 날은, 해도 달도 없는 날에 나를 낳았나.” 얼마 전 제주도 해녀박물관에서 해녀들의 이 노래 구절을 듣고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노래가 바로 해녀의 딸이자, 다른 해녀들의 어머니가 불렀을 노래였기 때문인 듯했다.

먼 옛날 이 노래를 처음 읊조렸을 해녀는 바다 깊은 곳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과거에 해녀들은 출산 후 사흘 만에 물질을 나갔다고 한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차가운 바다에서 마치 밤낮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매일 똑같은 고된 일에 몸을 던졌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불렀을 노래이다. ‘해녀 어머니’의 바닷속 삶은 그 딸이 해녀로 살면서, 그 딸의 딸들, 후배 해녀들이 해녀 어머니의 노래를 되뇌며 기억됐으리라. 온전하게 기억된 누군가의 삶에는 그다음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상처가 함께 쌓여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불현듯 해녀의 노래가 다시 떠오른 것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을 때였다. 어떤 사람은 치밀하게 계획됐을 아베 정권의 ‘한국 때리기’를 왜 미리 감지하지 못해 이 지경을 만들었으며, 사리에 맞지 않는 반일감정만 키우고 있냐며 정부를 비판했다. 일본의 보복이 이렇게까지 주도면밀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으며, 외교적으로도 마땅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던 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일 갈등이 더 커져 수입에 차질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업인들의 목소리에도 정부가 귀를 기울여 세심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일 갈등이 격화된 것은 뿌리 깊은 일본의 역사 왜곡 때문이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아베 정권이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명확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일제의 강제징용 범죄를 마치 현재의 자기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의 부모 세대가 겪었을 고통을 한번 돌이켜 상상이라도 해보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악화일로인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앞뒤를 자른 주장에는 어차피 일본에 맞서 싸우면 크게 패할 수밖에 없으니 급한 불을 끄는 게 중요하다는 이른바 현실론자들도 힘을 싣고 나선다.

그렇다고 해서 “각박한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지난날의 감정에만 집착해 있을 수 없다”는 투의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의 군수공장에서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베어링을 깎는 중노동을 하며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10대 소녀의 비극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공장에서 잘려나간 한국인 소녀의 손가락을 공중에 던지며 조롱했다는 일본인의 잔혹함을 기억한다면 당장 탈 없는 한·일 관계 형성에나 힘을 쓰라는 식의 폭력적인 말을 꺼낼 수 없다. 일제가 불법 동원한 노역에 청춘을 바쳤을 780만명의 고통을 한국과 일본의 발전적인 미래에 헌납할 수 없다.

한·일 양측 모두 손해라고 여기는 ‘정치적 거래’로는 진정한 의미의 한·일 관계 개선도 이뤄지기 어렵다. 죽창이라도 들어 올리는 결기로 일본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겐 지금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땅히 행사해야 할 배상권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제는 강제 징용됐던 한 할머니가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듯 “미안해 죽겠다”고 말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전쟁 범죄에 전리품으로 쓰인 징용 노동자들의 비극을 이번에 또 ‘어쩔 수 없는 합의’로 봉합한다면, 이 비극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나라가 아니더라도 어느 다른 나라의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라고 했던 황현산 선생의 글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

김경택 정치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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