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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없는 하얀 비석이 일깨움을 전하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자리한 필암서원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이달 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시대 서원 9곳 중 하나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안온하게 자리한 홍살문 뒤 확연루와 청절당 등이 조선시대 건축의 묘미를 보여준다.


황룡면 맥동마을 입구 ‘붓처럼 생긴 바위’에 새겨져 있는 ‘筆巖’(필암).


황룡면 금호리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한 박수량의 묘와 비석.


수직으로 뻗어 있는 축령산 편백숲.


조선시대 서원(書院)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이 이달 초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공립학교인 향교(鄕校)와 구분되는 향촌사회의 사설학교라는 점과 지형조건을 활용한 독창적인 건축 배치 등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조선 성리학의 예(禮)를 꾸준히 실천하고 행동했던 조선 선비의 정신이 높이 평가됐다.

9곳 가운데 하나가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자리한 필암서원이다. 사적 제242호로, 기대승과 함께 호남 유학의 양대 인물로 꼽히는 하서(河西) 김인후(1510~1560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90년(선조 23년) 그의 고향인 장성읍 기산리에 건립됐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진 뒤 1624년 김인후가 태어난 황룡면 증산동에 문을 열었으나 수해를 입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에 자리를 옮겨 황룡면 필암리에 다시 세웠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호남지역에 유일하게 남은 서원이다. 서원 이름을 ‘필암(筆巖)’으로 지은 것은 김인후의 고향인 맥동마을 입구에 있는 ‘붓처럼 생긴 바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인후는 퇴계 이황과 성균관에서 동문수학을 했다. 과거 급제 이후 조정에 들어가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 역할을 한 당대의 석학이다. 인종이 세상을 뜨자 고향으로 내려와 벼슬을 마다한 채 후학을 양성하며 일생을 보냈다.

필암서원은 조선시대 건축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나지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평평한 곳에 자리해 안온해 보인다. 서원 바깥에는 노거수 은행나무와 홍살문이 자리한다. 서원의 출입구이자 대표적 건축물인 확연루가 돋보인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2층 문루 건물이다. 2층 마루는 선비들의 휴식처이자 시회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확연루 정면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이어 서원의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던 강학당인 ‘청절당’이 나온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필암서원에서 가장 크다. 영조 때 학자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청절당을 지나 만나는 재실은 원생들이 기거하는 일종의 기숙사다. 오른쪽 동재에는 선배가, 서재에는 후배가 머물렀다.

서원에는 ‘보물 제587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筆巖書院 文蹟 一括 노비보·원장선생안·집강안·원적·봉심록·서원성책 등)과 인종이 김인후에게 하사한 ‘묵죽도(墨竹圖)’와 ‘하서유묵(河西遺墨)’ 등 60여건의 자료가 보존·관리되고 있다. 동쪽 경장각에는 정조가 하사한 편액과 인조가 하사한 묵죽도 판각 등을 보관하고 있다.

필암서원은 조선 청백리 생활을 체험하는 청렴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부 중앙부처와 산하기관, 전국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정부 출연기관 등의 공직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장성에서 청빈한 삶을 산 선비로 박수량(1491~1554)이 꼽힌다. 황룡면 금호리의 마을 길을 따라가면 길 끝에서 노송이 우거진 나지막한 언덕이 나타난다. 오솔길을 오르면 그의 묘를 만날 수 있다. 묘 앞에 세워진 흰 비석에는 글자가 전혀 없다.

사연은 이렇다. 박수량은 기대승과 김인후보다 선배로 한성판윤(서울시장) 자리에 올랐고 형조·예조·공조·호조판서 직을 두루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생가에는 끼니때에도 굴뚝 연기가 올라오지 않을 때가 많았고, 집이 낡아 비가 샐 정도였단다. 예순네 살로 삶을 마감할 때 술잔 하나와 갓끈 한 타래만 유산으로 남겼을 정도다.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도 있었다. 그러나 명종이 흰돌을 비석으로 내려보내며 ‘청빈한 삶이 욕되지 않도록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명했다. 박수량의 묘 앞에는 글자를 새기지 않은 ‘백비’(白碑)가 세워졌다.

북일면 금곡마을과 서상면 모암마을에 걸쳐 있는 축령산 편백숲도 찾아봐야 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편백과 삼나무가 참빗처럼 가지런하다. 산림청 지정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숲’에 이름을 올렸다.

숲은 자연림이 아닌 인공조림지다. 춘원 임종국(1915∼1987)이라는 한 개인의 열정과 혼신의 노력에 의해 조성됐다. 양잠 등으로 재산을 모은 임씨는 1950년대 중반부터 조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57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약 20년간 축령산에 나무를 심고 가꿨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헐벗게 된 산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축령산 중턱에는 ‘춘원 임종국 조림 공적비’도 세워졌다.

그가 나무를 심기 위해 만들었던 임도는 훌륭한 산책로가 됐다. 수직의 숲에 들어서면 피톤치드의 왕이라는 편백의 나무향이 폐까지 스며든다. 몸과 마음이 한결 맑아진다.

여행메모

‘홍길동 고향’에 숙소 갖춘 테마파크
메기매운탕·꿩샤부샤부 등 ‘별미’


필암서원은 호남고속도로 장성나들목으로 나와 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다 장성교차로에서 ‘함평, 해보, 상무대, 혁신도시’ 방면으로 빠져 24번 국도로 갈아탄다. 이어 황룡사거리에서 우회전, TMO사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장산교 직전에 ‘축령산휴양림, 홍길동테마파크, 필암서원’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축령산은 고창담양고속도로 장성물류나들목에서, 박수량 백비는 홍길동테마파크에서 가깝다.

필암서원 인근에 홍길동 생가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에 홍길동의 고향으로 언급돼 있는 것을 테마파크로 꾸며 놓았다. 놀이시설 없이 한옥 숙소와 너른 초지, 분수, 영상관, 기념관 등을 갖추고 있다.

장성읍에 있는 초야식당은 메기매운탕으로, 풍미회관은 한정식을 내놓는다. 단풍두부의 두부전골이나 산골짜기의 꿩샤부샤부도 별미다. 이밖에 장성에서는 장성호, 백양사, 입암산성 등 볼거리가 많다.

장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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