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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한국의 미래전략은 무엇인가



일본 미래전략은 미국 대리해 중국에 대척하는 지역패권국 되는 것… 경제보복은 그 과정에서 한국 제압하려는 전술
유엔사에 일본 참여는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 냉혹한 강대국 미래전략에 반일·애국심으로 어설프게 대응해서야


지난주 발간된 주한미군의 공식 문건에는 유엔군사령부의 임무 수행을 강화하기 위해 “유엔 전력제공국의 병력 증원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라며 “유엔사는 위기시 필요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란 문구가 실렸다. 주한미군과 유엔군은 다른 조직이지만 현실적 역할과 기능을 감안하면 사실상 ‘주한미군사령부=유엔군사령부’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도 겸임한다. 주한미군의 공식문건에 유엔사에서 일본 역할을 언급한 건 처음이다. 실제로 시행된다면 유사시 유엔군 깃발 아래 자위대가 한반도 땅을 밟는다는 뜻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일 간 해결되지 않은 민감한 징용 배상 문제가 직접 원인이다. 세상의 모든 갈등이 그러하듯 단일 요인에 의한 갈등 발생이란 건 없다. 별개인 것 같지만 상호 영향을 줬던 요인들이 누적돼 있고, 역사적 배경이 있으며, 많은 경우 미래 전략의 현실적 충돌이기도 하다. 당사자 간 감정은 갈등 증폭 요인이다. 게다가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이용해 이익을 만들어내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본질이다. 첨단소재 수출규제는 일본이 종합적으로 판단한 중간 결과물일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유엔사(사실은 미국)의 일본 참여 검토와 일본의 경제보복은 별개 사안인가. 안보와 경제이고, 주체가 다르니 그렇다고 한다면 너무 천진난만하다. 두 사안은 미·일의 세계·동아시아전략, 미래전략이 어우러지면서 서로의 국가이익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런 지점은 다른 영역 곳곳에도 있다.

우선 일본은 동아시아·서태평양에서 미국의 대리 역할을 원한다. 지향점은 중국에 대척하는 지역패권이다. 대리 역할이 필요한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읽은 것이다. 안보·경제에서 미국 부담을 덜어주고, 이 과정에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봐야 한다. ‘2020년 보통국가’는 이를 위한 아베 총리의 중간 목표이다. 가장 걸림돌은 전후 기적적인 경제성장으로 일본을 쫓는 한국이다. 군사비 는 일본이 466억 달러·세계 9위·전 세계 군사비 중 2.6%, 한국이 431억 달러·10위·2.4%(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2018)로 엇비슷하니 경계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일본 4조8721억 달러·세계 3위, 한국 1조5308억 달러·12위(세계은행, 2017)로 다소 차이가 난다. 더 이상 따라오면 위험하다. 그런데 한국은 최근 경제가 뒷걸음치고, 내부는 무익한 이념 싸움으로 힘을 모으지 못하는 상태다. 한국의 급소 몇 곳을 칠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더 이상 일본을 넘보지 못하게 말이다. 경제보복은 미국을 대리할 지역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일본 미래전략의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근거 없는 북한 문제를 슬쩍 얹은 것은 한국 내 분열을 더 조장하고, 확실한 대북자세를 미국에 각인시키려는, 저급하지만 미래전략 속 일본판 북풍 전술이다.

일본의 미래전략은 일본 우익의 오랜 ‘정성’과 미국 이익의 교집합이다. 미국은 태평양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을 막기 위해 호주-일본-인도를 잇는 인도·태평양전략을 최우선에 뒀다. 미국우선주의는 경제적 이익 극대화와 안보 부담 경감이라는 구체적 정책으로 나타난다. 일본과 독일이 유엔사에 참여해 동아시아에서 나토(NATO) 같은 다국적군의 집단안보체제가 가동되면 중국 포위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 주도적 역할을 일본이 나서서 해준다면 미국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첩보와 신호, 상황을 연결해 의미 있는 정보를 생산해내지 못하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미 의회조사위와 행정부가 수년 동안 9·11 발생원인을 추적, 도달한 결론 중 하나다. 미국과 일본, 여기에 중국·러시아까지 가세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미래전략은 우리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단순히 참의원 선거용이라든지, 혐한 여론을 등에 업은 국내용이라든지, 그래서 조만간 해결 가능성이 있다든지 하는 주장은 안일하다 못해 아주 무책임하다. 반일 감정에 기대서 오로지 애국심으로 이 상황을 돌파하려는 정치는 무능의 극치다. 일본 우익의 주류는 몇 차례 한국을 유린했던 역사와 지금을 비교하며 한국이 반일감정으로 어설프게 대응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겠나.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우리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닌 것은 일본의 무리한 경제보복에서 역설적으로 읽을 수 있다. 우리의 잠재력과 추격의 강도가 무섭기 때문일 게다. 그런 잠재력을 구체적 힘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정치지도력의 무능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강국의 미래전략에 나라가 이리저리 차이는데 여든 야든 국내 선거만 이기면 뭐하겠는가. 생각이 달라도 외부공격 앞에서는 냉철히 생각하고 뭉쳐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경험해야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비스마르크)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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