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뉴스룸에서-권기석] 사라진 국민연금 개편 논의



지난해 뜨거웠던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네 가지 대안을 담은 개혁안(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내놨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합의안을 도출한 뒤 이를 국회에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연금특위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지난 4월 말 해산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두 달 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연금특위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경사노위 홈페이지에서 회의록을 찾아봤더니 ‘퇴직금 전환금’ 두 단어가 보였다. 지난 4월 26일 열린 마지막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퇴직금 전환금을 논의했다. 직원 은퇴에 대비해 기업이 적립하는 퇴직연금 중 일부를 미리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게 하자는 개념이다. 공익위원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급격한 보험료율 인상의 대안으로 퇴직금 전환금을 고려할 수 있다”면서 ‘현재 8.3%인 퇴직연금에서 최소 3%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가져오고 노·사는 20년에 걸쳐 0.15%씩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퇴직금 전환금을 도입하면 연금 재정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기고 연금 고갈 시점도 늦출 수 있게 된다.

직장인 입장에서는 황당한 발상이다. 퇴직연금은 은퇴하면 어차피 받을 돈이다. 그야말로 조삼모사다. 퇴직금 전환은 기업에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연금 보험료를 올리면 인상분의 절반만큼 기업 부담이 생기는데 퇴직금 전환금 제도에서는 어차피 지급할 돈이 나가게 된다.

회의록에서도 경영계는 퇴직금 전환을 반겼고 노동계는 신중했다. 시민단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노동자에게 퇴직금은 생계와 직결되므로 쉽게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며 반대했다. 고용노동부도 “퇴직금은 일에 대한 대가이므로 국민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난색을 표했다. 퇴직연금 등을 통해 다층노후소득보장 체제를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퇴직금을 국민연금으로 전환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퇴직금 전환금 제도는 1993년부터 99년까지 시행된 적이 있다. 98~99년 연금 보험료는 소득의 9%였는데 사용자가 3%, 근로자가 3%를 내고 나머지 3%는 퇴직금을 전환했다. 앞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회의에서 나타났듯이 경영계를 제외한 다른 사회 주체들이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이 논의가 연금특위 밖의 세계, 즉 일반 여론의 장에 나오는 순간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연금 전문가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 퇴직금에 손대지 말라’는 목소리를 막기 힘들 것이다.

연금특위 회의는 연금 재정 확충과 관련해 다른 방법도 거론했다. 납부 연령 연장, 납부 상한액 인상, 근로소득 외 보험료 부과 등이다. 마지막 회의는 참석자에게 서면으로 이에 관한 의견을 제출해 달라고 하고 마무리됐다.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정공법 대신 다른 대안을 찾겠다는 것인데, 연금특위가 다시 가동돼 논의를 한다고 해도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연금특위에서 합의가 어려운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사이 아까운 시간만 흘러갔다. 네 가지 대안이 나온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연금특위 다음 순서인 국회가 관련 논의기구를 꾸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최근 국회의 행태를 보면 적절한 개혁안 도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름이 지나면 국정감사 시즌이고 국감이 끝나면 내년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게 된다. 국회의원 후보들은 유권자 부담이 늘어나는 국민연금 개혁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총대를 누구도 메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금 개혁이 왜 필요한지 국민을 설득하는 대신 이해 당사자한테 ‘합의해 오라’고 했으니 진척되기 힘들다. 미래 위기에 관한 개혁에서 필요한 건 현재의 이해 당사자끼리의 합의가 아니다. 개혁 의지를 가진 리더와 그의 추진력이다. 2057년 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계산은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권기석 사회부 차장 keys@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