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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마강래] 지방, 뭉쳐야 강하고 아름다워진다



얼마 전 건네받은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님의 명함엔 눈에 띄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소다연강미(小多連强美). 작지만 수많은 주체가 서로 힘을 합치면 강하고 아름다워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방의 경우는 반대로 가고 있다. 인구와 일자리가 축소되는 상황 속에서 제로섬의 경쟁 양상이 심화하고 있다. 반면에 수도권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교통망은 더 촘촘해지고, 생활권도 확대되는 중이다. 수도권 내 66개 자치구의 기능적 연계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된 상태다.

지방에선 이 모든 게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 얘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에 행정·재정적 권한이 과도하게 편중돼 있다. 그러니 지방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어렵다. 중앙의 눈치를 보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방은 작금의 상황을 자치가 아닌 ‘탁치’라 규정하며 분권을 요구하고 있다. 이양되는 권한에는 행정, 입법, 복지, 재정 등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무얼까. 두말할 필요 없다. 재정 분권이 가장 중요하다. 돈이 있어야 자율적인 행정과 입법, 복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80%에 가까운 세금을 중앙정부가 걷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경제적 자주권이 없는 자치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2022년까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장기적으로는 6대 4로 지방세 비율을 더 높이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구체적 대안은 없다. 얼마 전 전국 시·도의회 의장들이 모여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명문화하고, 중앙정부의 의지를 보여달라”며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분권이 없다면 자치는 불가능하다. 분권을 통한 ‘자율과 책임’의 원리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그러니 중앙과 지방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쩐의 전쟁’에서도 지방의 승리를 응원한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자. 지방이라고 다 같은 지방은 아니다. 권한을 받는 지방에는 경북 의성군, 고령군 같은 가난한 지자체뿐만 아니라 경기도 수원시, 성남시, 고양시, 용인시, 화성시 같은 수도권 부자 지자체들도 포함된다. 분권이 진행되면 지자체 모두가 권한을 이양받아 주민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이런 노력의 결과는? 지자체들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더 갖는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지자체의 명암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더욱 가난해진 지자체는 주변 지역에 인구와 산업을 뺏기며 더 빈궁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1995년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래 지방의 상황은 더욱 악화돼 왔다. 이에 따라 중앙 의존성도 커졌다. 나도 ‘중앙 바라기’로 변해가는 지방을 보며 강준만 교수의 ‘지방 내부식민론’이 예전보다 더 크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지자체가 잘게 쪼개져 있고, 격차가 큰 상황에서의 재정 분권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한 권력관계가 더욱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의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분권은 분할통치(Divide and Rule)에서 볼 수 있는 종속관계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분할통치란 피지배층들을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게 함으로써 지배자의 상대적 권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흩어진 피지배층은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지배자의 상대적 권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로마제국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정복 지역의 행정구역을 잘게 분할해 서로 대립하게 했기 때문이다. 몽골제국도 이런 통치 기술을 이용해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지방은 뭉쳐야 한다. 분권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로 흩어져 제살깎기식 경쟁을 하다간 미래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 더 넓어져만 가는 생활권역과 행정권역을 인정하고 연대를 통해 힘을 키워야 한다. 중앙의 틀어쥔 권한이 이양돼야 할 공간적 단위는 226개 기초지자체가 아니다. 조그만 지자체들이 연대한 광역적 행정단위에 더 많은 권한이 가야 한다. 그리고 광역행정 단위는 조그만 지자체들의 연계가 더 공고해지는 쪽으로 권한을 재배분해야 한다.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든 큰 힘’을 키워 나가는 것, 이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지방이 가진 마지막 카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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