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꽤 좋다. ‘잘사는 나라’라는 인식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위시한 한류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면서 한국은 ‘한 번쯤 꼭 가 보고 싶은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베트남은 축구 국가대표팀을 동남아의 최강자로 우뚝 세운 박항서 감독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동남아 한류의 본거지가 됐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열릴 때면 베트남 국기만큼이나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과 박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베트남 국민이다.
이랬던 베트남에서 반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전남 영암에서 30대 남성이 베트남인 아내를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현지에 퍼진 탓이다. 사과를 해도 용서받기 힘든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 남성이 뉘우치기는커녕 “다른 남편도 그랬을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 것이 베트남 여론을 더 자극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이런 대우를 받았다면 국내에서도 그 나라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을 게다. 이런 게 민심이다.
베트남 언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 사건까지 끄집어냈다. 이번 사건 역시 충격적이나 2007년 충남 천안에서 발생한 사건에 비하면 약과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19살의 후안마이는 46살 남편의 무차별 구타로 숨졌다. 결혼 한 달 만에 일어난 비극이다. 2014년엔 남편이 베트남 국적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경남 양산과 강원도 홍천에서 두 차례 일어났고, 2017년 서울에선 83세의 한국인 시아버지가 용돈을 주지 않는다며 31세 베트남 출신 며느리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마당에 또 반문명적 폭행사건이 일어났으니 베트남에서 반한 감정이 이는 건 당연하다.
그런가 하면 태국에선 이른바 ‘대왕조개 사건’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SBS ‘정글의 법칙’ 출연진이 태국 국립공원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세계적 보호를 받고 있는 대왕조개를 잡아먹은 게 사단이 됐다. 제작진은 관련법을 몰라서 벌어진 실수였다고 하나 태국인 입장에선 비겁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시청률에 집착한 의욕 과잉이 빚은 방송사의 명백한 잘못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봉제업체 ㈜에스카베 대표가 현지인 직원 3000여명의 임금 4억8000만원 등 70여억원을 떼먹고 야반도주한 사건의 후유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현지에 진출한 2000여개 한국기업까지 덩달아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한다.
좋은 이미지를 쌓는 건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추락하는 건 찰나다. 해외여행자유화 조치 초기 공항 아무데서나 자리 펴고 술 마시거나 고스톱 치는 한국인 관광객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이 같은 ‘어글리 코리안’이 사라졌지만 새로운 어글리 코리안이 나라의 품격을 갉아먹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여러 사람이 각고의 노력으로 심은 한국의 좋은 이미지가 개인의 일탈로 한순간 무너져내리면 그 손해는 누가 보상해줄 건가.
이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