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돋을새김-고세욱] 한선태와 화성 FC의 꿈



스포츠는 스타의 무대다. 전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최근 자신의 SNS에 “IMF(외환위기) 때 박세리, 박찬호가 나왔다면 그때보다 어렵다고 하는 요즘 류현진과 손흥민이 훌륭한 역할을 하며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스포츠 파이팅!”이라고 적었다. 오늘날 스포츠 스타의 위상을 쉽게 요약했다.

스포츠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강자를 넘어서려는 약자의 분투와 극적인 승리는 스타들의 활약 못잖게 스포츠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지난달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에 환호한 것은 그들이 월드컵 준우승의 영웅이라서가 아니다. 무명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믿고 태극마크 아래 뭉쳐 기적을 연출한 투혼 때문이다.

현재 우리 스포츠계에 작지만 의미 있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불펜 투수 한선태(25). 그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을 TV로 보고 나서 야구에 처음 관심을 가졌다. 한선태는 고교에 진학한 뒤 야구부에 입부원서를 냈지만 일반 학생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야구부가 있는 명문 대학에도 발을 딛지 못했다.

하지만 한선태는 포기하지 않았다. 야구 아카데미를 노크한 데 이어 한국과 일본의 독립야구단에 입단하며 기초를 다졌다. 지난해 프로구단 육성선수라도 하기 위해 드래프트를 신청했는데 거의 마지막 순번에 호명됐다. 비선수 출신 최초의 프로 지명이었다.

이를 악물고 2군에서 공을 던졌다. 0점대 평균자책점의 투구가 이어지자 1군으로 호출됐다. 지난달 25일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 8회 초 한선태는 마운드에 올랐다. 비선수 출신 사상 첫 프로 1군 등판이었다. 그렇다고 등판에만 의의를 두진 않았다. 한선태는 7일까지 총 5경기에 나와 무실점을 기록하며 엘리트 투수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프로야구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있다.

지난 3일 경남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FA컵 8강전. 프로축구 K리그1(1부리그) 경남 FC의 상대는 아마추어 리그인 K3리그(4부리그)의 화성 FC다. 급으로 보면 골리앗과 다윗 수준. 화성은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대 1로 승리, K3리그 팀으론 처음 FA컵 4강에 올랐다.

K3리그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학생, 팀에서 방출돼 재도약을 노리는 프로 선수들로 구성됐다. 연봉은 평균 2000만원 안팎이다. 지난해까지 K리그1에서 뛰었던 김동석은 4강 진출 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살아 있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K리그1에서 뛰고 싶다는 꿈과 간절함이 기량의 차이를 넘어선 것이다.

한선태와 화성의 질주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프로야구는 치솟는 선수들의 몸값에 비해 수준 이하의 플레이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축구는 국가대표팀의 선전으로 인기가 올랐지만 아시아에서조차 밀리는 리그 수준이 고민이다. 이런 와중에 포기하지 않는 열정, 목표를 향한 헌신, 공 하나 슛 한 번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자세는 매너리즘에 빠진 인기 종목에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팬들은 바닥을 딛고 서는 언더독의 부상에 감동을 느끼게 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쓰리 세컨즈’는 1972년 뮌헨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의 극적 승부를 다뤘다. 당시 최강 미국에 1점차로 지고 있던 구소련은 심판의 착오로 빼앗긴 종료 전 3초의 시간을 얻었다. 최후의 승부를 가를 그 시간에 한 소련 선수는 “살아 있는 한 우린 뭐든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공을 던진다. 그리고 올림픽 역사에 남을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한선태와 화성은 저마다 ‘쓰리 세컨즈’의 상황에 몰릴지라도 꿈을 위해 매진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묵묵히 땀 흘려 훈련하는 무명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