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외교, 아슬아슬하다



일본 치졸하지만 대일 외교 방기한 문재인정부 잘못도 커
미·중 사이에선 전략적 모호성 유지하고 있지만 양쪽으로부터 협공 받는 신세
과거사와 북한에 집중돼 있는 외교에서 벗어나야 할 때


외교라인이 바빠졌다. 한·일 관계 악화가 직접적 계기다. 문재인정부의 일본군위안부 합의 뒤집기에 이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발끈한 일본 정부가 불쑥 대한(對韓) 수출규제라는 보복 카드를 들고 나오자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 신소재 산업에 매년 1조원을 투자하겠다, 수입선을 다변화하겠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외교 현안을 논의하는 외교전략조정회의를 출범시켜 대책을 마련하겠다, 대통령이 10일 30대 그룹 총수들과 만나 상응조치를 논의하겠다는 등 지켜보는 이들도 정신없을 지경이다.

일본 행태는 지나치다. 일본 국내에서도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외교적 사안은 대화로 풀 일이지, 수출규제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잘 산다고 으스대는 꼴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내 혐한 분위기를 활용하려는 점도 볼썽사납다. 경제부국인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새삼 알 법하다.

그렇다고 문재인정부의 잘못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일본이 반도체와 스마트폰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 수출에 제동을 걸 가능성은 수개월 전부터 제기돼 왔으나 정부는 ‘설마’하며 방관했다. ‘무능 외교’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악재가 추가됐다. 또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배상 판결 등 과거사 문제의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대일(對日) 외교는 실종 상태였고, 민족주의적 한풀이만 횡행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하순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무산되고, 아베 총리와의 ‘8초 악수’ 등 홀대 받은 건 그 결과다. 돌이켜보면,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후 대일 외교를 방기하다시피 했다. 갈등과 불신이 증폭됐고, 곪을 대로 곪은 게 터진 상태다.

해법이 여의치 않다. 정치 지도자들이 꼬인 매듭을 풀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기류는 아직 없다. 일본은 추가 보복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우리 정부는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 중이다. 힘겨루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 사이 우리 경제는 더 엉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일 외교뿐 아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 역시 아슬아슬하다. 정치와 통상을 넘어 안보, 자원, 기술,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패권전쟁 중인 미·중은 한국에 “중간지대는 없다”며 압력을 가하는 중이다. 미국은 ‘반(反)화웨이 연합’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중국은 사드 문제를 거론하며 미국이 아닌 중국 편에 설 것을 주문한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전략적 모호성 유지가 거의 전부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 데서 분명히 나타난다. 안보(미국)와 경제(중국)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택일하라”는 미국과 중국의 강요는 계속될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미 중에 비해 한국은 약자다. 강자가 약자의 전략적 모호성을 언제까지나 이해해 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이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미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선 문재인정부가 북한과 친해지기 위해 미국을 이용한다는 의구심이 여전하다. ‘저러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기울어지는 거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일상적인 소통이야 이뤄지겠지만 북핵과 화웨이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내밀한 정보 교류 채널이 원활하게 작동할 리 없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및 무기 구매 요구, 통상 압력 등 다양한 카드들을 내밀며 ‘딴 생각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 보복에 이어 군함과 전투기를 동원한 군사적 위협, 미세먼지 대책 방치 등 한국을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말로는 ‘실질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면서도,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틈을 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대미, 대중, 대일 외교가 망가진 건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도록 한반도 주변국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안이한 사고와 행동이 외교 환경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미·중·일에 대한 정책이 대북정책의 하위개념 정도로 다뤄지다 보니 혼선이 생기고 얕보이게 됐다는 얘기다. 그 사이 미·일은 찰떡궁합을 자랑 중이고, 중·일은 가까워지고, 북한은 중·러에 손짓을 보내고 있다. 동북아에서 한국만 외톨이가 돼가는 형국이다.

과거사와 북한 문제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외교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그런데 쉽지 않을 듯하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난데없이 ‘친일파’ 프레임을 들고 나오고, 김정은에게는 아직도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 아닌가. 더 큰 화를 당할까 걱정이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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