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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천지우] 지나간 세대의 마지막 결투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참석차 지난달 도쿄 출장을 다녀온 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일 갈등에 관한 인식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려 있을 것이냐, 이제는 좀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존의 내 생각이 흔들렸다.

우선 그곳에서 만난 일본 언론인과 학자, 관료들의 차갑고 단호한 표정과 언사가 서운하게 느껴졌다. 대부분 지한파인 그들은 입을 모아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너희가 잘못한 거야. 그것 때문에 정말 큰일 났어. 너희 정부가 빨리 해결해야 돼”라고 말했다. ‘한국을 잘 알고 배려해온 우리조차 이건 좋게 봐줄 수 없는 문제야’라는 반응이었다. 몹시 단호했고, 그런 태도에서 거만한 혼네(속마음)가 드러났다.

거만함에 상처받은 와중에 “지금 갈등이 폭발한 게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한국 측 참석자 발언이 귀에 들어왔다. 양국 간에 묵혀뒀던 문제들이 다 불거졌으니 이참에 말끔히 털어내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주장이었다.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인 이명찬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가 한국이 성장하니 이제야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형편없던 친구(한국)가 좀 살게 됐다고 목소리를 낸다고 일본은 생각한다. 혼네와 혼네가 부딪혀야 무언가가 나온다. 양국의 10, 20대는 상대국에 대한 인식이 나이든 세대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현 갈등은 ‘지나간 세대의 마지막 결투’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해결되면 앞으로의 양국 관계가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배종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부정적인 것을 은폐하거나 스스로 부정하는 상태가 오히려 불안하다. 돌리던 폭탄이 터진 지금 상태가 한·일 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비극적 희생의 기억을 자기 정당화의 기제로 삼는 민족주의)에 대한 불만이 커서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을 빨리 털고 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만든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최근 저서 ‘기억전쟁-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를 읽어보니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정신과 의사 노다 마사아키의 분석에 따르면, 전후 일본의 집단 심리는 ‘전쟁은 본래 비참한 것’이라는 대전제 아래 일본 군부 지도자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지 않고 전쟁에 동조한 평범한 일본인 모두에게 면죄부를 발부했다. 일본 내에서 전쟁 피해 보상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일본 최고재판소는 수인(受忍·참고 받아들여야 함)의 원칙을 적용했다. 전쟁은 다들 힘든 일이니 피곤하게 책임을 따지지 말자는 이런 입장에 반성적 성찰이 끼어들 여지는 없을 것이다.

임 교수는 “기억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서둘러 가해자를 용서하고 상처를 봉합해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끔찍한 행위조차도 인간성의 일부임을 아프게 인정하고 인간의 그 끔찍한 일부가 다시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더 나은 기억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 전쟁의 책임을 추궁하는 게 타당하냐는 문제도 있다. 임 교수는 “전후 세대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그러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라고 했다. 징용 피해자 배상 건은 전후 세대(관련 일본 기업)가 연루된 문제여서 다른 대처가 요구되지만, 여타 과거사 문제에 관해선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 ‘기억의 책임’을 계속 요구할 필요가 있겠다.

다만 ‘우리는 희생자니까 떳떳하다’는 도덕적 정당성에 안주하며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돌아보지 않은 채 요구만 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세계 일주를 떠났던 안동원은 런던에서 봉변을 당했다. 싱가포르 포로수용소에서 일본군 휘하의 조선인 군무원들에게 학대를 당했던 영국군 포로 출신이 “한국 놈이 더 나쁘다”며 달려든 것이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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