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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서윤경] 기생충 그리고 오감



“비 내리는 아침에 문장을 쓰면, 무슨 영문에선지 그것은 비 내리는 아침 같은 문장이 되고 만다. 나중에 아무리 손질을 해도 그 문장에서 비 내음을 지울 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의 미코노스를 떠난 직후 한 문예지에 쓴 글이다. 자신의 글엔 집필할 당시의 날씨와 환경이 묻어난다며 미코노스에서 쓴 소설에는 비 냄새가 난다고 했다. 하루키가 비오는 날 쓴 자신의 글에서 비 냄새를 맡았다면 기자는 비에서 회색을 본다. 그렇게 사람은 저마다 후각, 청각, 미각, 시각과 촉각 등 오감 중 예민한 감각을 상황에 투영한다.

아마도 영화 기생충에서 성공한 IT기업 사장인 박 사장은 후각에 민감한 사람이었을 듯싶다. 부유층의 삶과 빈민층의 감정을 교묘히 보여주는 영화에서 박 사장과 그의 아들은 끊임없이 냄새를 이야기한다. 반지하에 살며 가족 전원이 백수인 김씨가 그들의 집에서 일할 때부터다. 냄새를 피하기 위해 코를 막기도 하고 냄새의 출처를 찾겠다며 김씨 가족에게 다가가 킁킁거리며 맡는다. 냄새의 정체를 추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박 사장은 자신의 운전기사가 된 김씨를 가리키며 “무슨 냄새인지 잘 설명할 순 없지만 지하철 타는 사람들한테 나는 그 이상한 냄새”라고 정의한다. 박 사장의 딸은 그 냄새의 정체를 ‘반지하 냄새’라고 규정했다.

만약 박 사장이 시각에 예민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미각, 촉각, 청각이 예민했다면. ‘만약’이라는 가정의 수고를 덜어주는 듯 봉준호 감독은 오감을 자극해 빈부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장치를 영화 곳곳에 넣었다. 후각은 영상으로 표현하지 못하니 대사로 말했다면 다른 감각들은 조명과 소품을 활용한 것도 같다. 박 사장의 집은 주황, 노랑, 초록, 흰색과 검정을 사용한 반면 김씨의 집이나 주변 환경은 초록과 파랑, 남색, 검정이 주를 이뤘다.

색과 심리를 다룬 책들에서 이 색깔들의 감정을 찾아보면 봉 감독의 의도를 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박 사장 가족에게 입힌 주황과 노랑, 초록, 흰색엔 사랑이나 화려 등 긍정적 감정들과 함께 풍요, 성공, 돈 등 경제적 개념이 더해진다. 김씨 가족을 표현하는 파란색이나 남색은 평화, 신비로움 등 긍정적 의미보다는 우울이나 속임수, 공포와 고독 쪽에 더 가깝다. 두 가족에게 동일하게 사용한 검정색도 박 사장은 권력이나 어두운 이면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반면 김씨는 죽음이나 절망, 공포를 그리는 데 쓰였다.

그렇다면 미각은 어떨까. 김씨의 가족이 4캔에 만원하는 외국 맥주를 마시는 장면에서도 안주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피자 박스 포장이 유일한 수입일 때는 외국 맥주에 과자가 안주의 전부였지만 박 사장의 집에 취업해 돈벌이가 나아지면서 삼겹살이 안주로 등장했다. 놀랍게도 집을 비운 박 사장 가족의 집에서 김씨 가족이 비싼 양주와 고급 안주를 먹을 때면 쾌감보다 묘한 불안감이 느껴진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 듯 말이다. 오감을 들이대며 영화 기생충을 설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먹고사는 문제’에 오감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 빈부격차라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며 오감을 건드린 탓인지 관객들이 느끼는 불편함의 강도는 예상보다 셌다. 영화 곡성을 보면 이틀간 불편하고 영화 기생충을 보면 일주일 내내 불편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인 듯싶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 5000만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30-50 클럽’에 가입했다. 거창한 문패를 달았지만 ‘먹고살기 힘들다’는 국민들의 아우성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궁금해진다. 추가경정예산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정부와 여당, 추경은 총선용에 불과하니 그 전에 문재인정부의 경제 실정부터 봐야 한다는 야당은 영화 기생충을 봤을까. 그리고 지난 주말 용산의 한 극장에서 기생충을 본 문재인 대통령은 관객들이 받은 그 불편함을 느꼈을까. 참고로 문 대통령이 기생충을 관람한 뒤 오늘로 닷새째다.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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