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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박상익]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미국 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는 그의 아버지(1936~82)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케냐 출신인 오바마 시니어는 하와이대 유학 시절인 1962년 캔자스주 출신의 백인 신입생 앤과 결혼을 했고, 아들(대통령 오바마)이 두 살 때인 64년 이혼한 뒤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그가 하와이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하루는 오랜 시간 꼼짝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난 뒤, 백인인 그의 장인(오바마 대통령의 외조부)과 친구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와이키키 바’라는 동네 술집에 가서 합석했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기타 연주를 들으며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백인 남성 하나가 벌떡 일어나 바텐더를 향해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깜둥이 옆에서는 좋은 술을 마실 수 없어”라고 외쳤다.

술집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일제히 오바마 시니어를 바라봤다. 다들 한판 싸움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텐더에게 항의한 그 백인에게 다가갔고,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편견의 어리석음과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인간이 가진 보편적 권리를 길게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백인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그는 미안했던지 주머니에서 돈을 100달러나 꺼내 오바마 시니어에게 건네줬다. 1960년대 초에 100달러라면 꽤 큰돈이었다. 그 돈으로 그날 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공짜로 술을 먹었다고 한다. 남은 돈으로 오바마 시니어는 그달치 집세를 냈다.

대통령 오바마가 아직 갓난아기였을 때의 이야기다. 오바마는 10대 소년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과연 사실일까 하고 반신반의했다. 너무 멋진 이야기라서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다. 세월이 흘러 번듯한 청년으로 자랐다.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던 오바마의 신문 인터뷰 기사를 읽은 어느 일본계 미국인이 오바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1960년대 초 하와이대를 다녔다고 했다. 오바마 시니어와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한 것이다. 신문에 실린 청년 오바마의 인터뷰를 읽다가 이름이 겹치는 오바마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갑자기 밀물처럼 밀려왔다고 했다. 학창시절 오바마 시니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래전 술집에서 어떤 백인 남자가 오바마 시니어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며 돈으로 용서를 구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틀림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와이대 졸업 후 장학생으로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한 오바마 시니어는 신생 독립국 케냐의 촉망 받는 수재였다. 훗날 귀국해 케냐 정부의 고위 경제 관료가 된 그는 마치 자석과도 같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성품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니 자신을 경멸한 백인을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시니어 개인의 탁월한 성품과 능력만으로 이 상황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아무리 옳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하면 용납하지 않으려는 감정과잉 사회, 합리적 설명을 들어도 ‘패거리 이익’에 어긋나면 한사코 귀를 틀어막는 소통불능의 우리 풍토에서는, 오히려 ‘흑인이 하는 옳은 말’을 듣고 즉석에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 ‘그른 말을 한 백인’이야말로 오바마 시니어 못지않게 대단한 인물로 보인다.

한국 현대사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 매몰된 정치인들의 추악한 선동과 맹목적인 추종자들의 광기로 점철되곤 했다. 오바마 시니어의 말을 듣고 솔직히 잘못을 인정한 ‘그 백인’의 용기에 감탄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광기’가 아니라 ‘용기’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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