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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한승주] 런던의 ‘BTS 로드’



그냥 한번 가보고 싶었다. 막연히 거리를 찾아 걸으면서 내가 좀 유난스러운가 싶기도 했다. 이달 초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런던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닌 한 거리였다. 지난해 멤버 뷔가 런던 공연을 위해 처음으로 이곳에 왔을 때 몇 장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중 하나가 어떤 거리의 신호등에 기대어 무심한 듯 찍은 것이다. 그곳을 가보리라. 그런데 찾을 수 있을까. 제법 유명한 거리라고 했다. 사진을 확대해보니 작게 매장 이름도 보였다. 그렇게 그 거리, 리젠트 스트리트에 도착해 많고 많은 신호등 중 어디일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웅성거리는 소리, 앗, 많은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가 찾던 그 신호등에서! 횡단보도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이었는데 뷔처럼 사진을 찍기 위해 팬들이 줄을 서 있었던 거다. 비틀스의 그 유명한 사진, 4명의 멤버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애비 로드(Abbey Road)’처럼, 이곳도 팬들인 ‘아미’에겐 ‘BTS 로드’가 된 것이다.

팬들은 신호등에 기대어 그가 바라봤을 하늘을 올려다봤고, 그가 갔던 레스토랑에서 똑같이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을 시켜놓고 인증샷을 찍었다. 또 다른 사진 속 장소인 타워브리지를 배경으로 야경을 찍으러 갔을 때도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꽤 넓은 공간이라 정확한 장소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어떤 팬이 “태형(뷔의 본명)아, 제발 정확한 위치를 알려줘”라고 소리를 질렀다.

리더 RM이 이번 방문 때 내셔널 갤러리 계단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후 이곳도 여지없이 아미들로 북적였다. 현장에 배치된 영국 직원에게 이 사람들 왜 줄 서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한 코리안 팝스타가 얼마 전 여기서 사진 찍고 갔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곤 “갑자기 내 직업이 ‘빨리 찍고 길 비켜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는 걸로 바뀌었다”며 웃었다.

파리에서도 BTS의 인기를 실감했다. 파리 시내버스 옆자리 프랑스 여성에게 “여기까지 몇 정거장 가야 되나요”라고 영어로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놀랍게도 한국어로 “일곱 정거장 남았어요.” 어, 내가 잘못 들었나? BTS 캐릭터 인형을 갖고 있던 나에게 그는 자신도 팬이라며 BTS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웠다고 얘기했다.

파리에서 만난 한 외교관은 이런 현상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했다. “요즘 BTS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프랑스에서도 BTS는 몰라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고 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인기가 많단다. BTS가 SNS에 올린 글 등을 바로 통역해줄 수 있어서다. 한국어가 큰 무기가 된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노르웨이를 국빈방문했을 때 “방탄소년단은 여기 언제 오느냐”고 했던 노르웨이 국왕의 질문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이번 여정에서 BTS의 웸블리(런던) 생드니(파리) 콘서트 네 번을 모두 관람했다. 레퍼토리는 같았지만 하나도 똑같은 공연이 없었다. 야외 스타디움에서 느껴지는 하루하루의 바람과 하늘, 팬들의 분위기, 이에 반응하는 BTS의 긴장감과 에너지가 달랐다. 영상으로만 보던 해외 팬들의 한국어 ‘떼창’에 놀랐고, BTS의 라이브 퍼포먼스에 감탄했다. 특히 런던 마지막 날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무대를 남기고 6만여 팬들이 BTS 몰래 준비한 한국어 노래를 한목소리로 부르던 순간이다. BTS가 힘든 시절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던 ‘에필로그: 영 포에버’라는 곡이다. 깜깜한 밤, ‘아미밤’(BTS 응원봉)이 밤하늘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다. 큰 스타디움이 반주 없이 팬들의 목소리만으로 들썩거렸다. 어두운 밤 우리는 빛나는 별 하나가 필요했는데 아미와 BTS는 서로에게 은하수를 가져다주었다. 이들은 이렇게 K팝이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며, BTS 로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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