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박형준 칼럼] 문제는 시장 실패가 아니라 정부 실패다



정의 앞세워 권력 휘두르고 예산만 늘리면 정부 실패
일자리 정책은 단기 알바 양산 부동산 조치는 지방 집값 하락 ‘비뚤어진 결과’ 초래해
노무현정부 트라우마로 끝까지 밀고만 나가선 안 돼
사람뿐 아니라 정책을 바꿔야


최근 경제 뉴스 몇 가지. 하나, 피치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0%로 낮춰 잡았다. 국제기관들의 성장률 예측치가 갈수록 떨어진다. 둘, 일본에서 최저임금 논쟁을 하는 데 한국이 실패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셋, 해외직접투자가 작년부터 급증해서 올해 1분기 제조업의 경우 작년 동기 대비 140%가 늘었다. 반면 국내 설비투자는 -10%였다. 넷, 국내 원자력 생태계가 와해되고 원자력 기술과 인재 유출이 심각하다. 다섯, 미·중 패권경쟁은 심화되고, 중국발 경제위기 가능성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경제에 관한 한 밝은 뉴스보다 어두운 뉴스가 압도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출발부터 ‘시장 실패’를 겨냥하고 나선 정부였다. 이 정권의 이념에는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율되지 않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재벌이 ‘악의 축’이라는 인식이 자리한다. 이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이 ‘질병’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해 메스를 가하게 만든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양극화를 바로잡고 공정경제라는 이름으로 재벌을 손보는 것을 정의로 내세웠다. 이런 ‘거룩한 일’을 하는 데 권력의 칼을 휘두르고 예산을 늘리는 것이 무엇이 문제이랴. 그것은 공공의 적을 물리치고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시장 실패를 과장했다.

‘시장 실패’는 ‘시장 성공’에 비하면 지엽적인 문제이고, 부작용을 줄인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소염진통제를 써야 할 환자에게 항암제를 쓰는 우를 범했다. 당연히 항암제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재벌을 혼내주면 중소기업이 살아나야 하는데, 중소기업이 가장 죽을 맛이 되었다. 최저임금을 올려주면 서민들이 득을 봐야 하는데, 서민의 핵심인 자영업자들과 고용안정성의 경계선에 있는 근로자들, 그리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 실패가 교정되면 투자가 늘어나야 하는데 투자는 급격히 줄고 기업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기 바쁘다.

원래 시장 실패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정부 실패다. 시장 실패 이론이 나온 이유가 합리적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는 요인을 찾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핵심적 요인에 이미 정부 리스크가 들어가 있다. 여기에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 개입을 강화하고, 공공성의 미명 아래 잘 들지도 않는 칼로 시장을 설 건드리면 정부 실패는 예정돼 있다. 정치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는 선거를 생각하는 정치세력의 내부자 논리가 강하고, 따라서 정보를 균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한다. 정권의 지지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국가사업을 진행해 자원 배분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다. 탈원전과 태양광 사업이 그 전형적 예이다.

탈원전은 불균형한 정보를 바탕으로 짓기로 했던 원전을 무리하게 중단시켰다. 결과는 그나마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산업 중 하나인 원전산업 생태계의 몰락 위기이다. 정부보조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태양광 사업은 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이 협동조합 등을 만들어 여권 일색인 지자체들을 끼고 하는 특혜 사업으로 변질됐다.

정부 실패의 백미는 ‘의도하지 않은 비뚤어진 결과(perverse result)’이다. 이 정부만큼 정책의 역설을 많이 경험하는 정부도 없을 것이다. 일자리 만들기가 최우선의 과제였는데, 일자리가 가장 늘지 않은 정부가 돼버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으나 질 좋은 풀타임 일자리는 줄고 단기 알바만 늘었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온갖 규제를 강화했더니 강남 집값은 쥐꼬리만큼 잡히다 다시 들썩이고, 지방은 집값이 왕창 떨어지고 거래도 안 된다. 제로페이 한다고 공무원 동원해서 가입시키고 정부 예산을 붓고 있으나 가맹점만 늘고 실제 이용자는 별로 없다. 서비스 대가를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제로페이와 서비스 대가를 받아야 하는 소비금융 회사들의 경쟁은 그 자체가 불공정 경쟁이다.

마침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바꿨다. 경제 부진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고 한다. 새 팀은 시장 실패를 고치겠다는 과욕이 아니라 정부 실패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권 초기에 TV 토론 등에서 이 정권 사람들이 강조했던 얘기가 있다. 노무현정부는 소신대로 못해서 좌절했으니 이 정권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가겠다고. 2년이 넘은 지금 이 정권은 다시 기로에 섰고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 심리대로 계속하면 정부 실패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 그것은 쓰나미가 몰려올 수도 있는 대외 환경에서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이전처럼 위기의식 없이 정부 예산에만 기대어 땜질하려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국제사회에 최저임금 실패 사례에 그치지 않고 정부 실패 사례로 회자될 수도 있다. 정말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라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사무총장)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