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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지호일] 여의도 평화 프로세스는 안 될 일인가



자유한국당을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확고한 듯하다. ‘제거해야 할 악(惡)’으로 간주한다고 하기엔 무리한 일일 테지만, 딱히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요즘 한국당을 지칭한 발언들을 보자. 일련의 흐름, 목적성 같은 게 읽힌다. ‘친일 잔재’(3·1절 경축사) ‘독재자의 후예’(5·18 기념식) ‘기득권층’(현충일 추념사)…. 우연히 선택한 어휘들로 보기 어렵다. 한국당을 하나의 틀로 규정짓기 하려는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1970, 80년대 운동권 진영의 필독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류가 대한민국 현대사를 보는 눈과 맞닿아 있다. “친일 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 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겁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출간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이 답하다’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그러면서 실행하지 못한 과거 청산의 기회로 해방 전후와 1987년 6월 항쟁 때를 꼽았다.

‘친일 대 반일’ ‘독재 대 반독재’ ‘개혁 대 반개혁’의 인식 구조에서 한국당은 ‘재조산하(再造山河)’나 ‘국가 대청소’의 대상이자 방해물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 제1야당을 향한 문 대통령의 태도에서 이런 감정이 종종 느껴졌다면 착각만은 아닐 터다.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를 보면서도 1974년 유신반대 시위 때 자신을 구속했던 공안검사가 풍기던 꺼림칙한 느낌을 함께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국회 정상화가 시급하다면서도 영수회담 방식을 두고 한국당과 티격태격하다 실기한 청와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한국당은 “대통령이 정쟁을 총지휘한다” “적대 정치를 부추긴다”며 불만을 쏟아내지만, 그 아우성은 청와대까지 가 닿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여의도 정치는 독기 오른 말 폭탄과 상대 진영을 조준한 엄포 속에 초토화돼가는 중이다.

대통령의 인내와 관용의 폭은 휴전선 이북을 향할 때 확 넓어진다. 청와대와 평양 간의 정서적, 심리적, 전략적 유대감은 청와대와 여의도 간의 거리보다 더 가까운 것 같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기치 아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종잡을 수 없는 처신을 하더라도 일단 화를 참고 역지사지하려는 입장을 보인다. 대화의 불씨가 꺼질까 노심초사, 애지중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묘한 것은 남북 관계의 실타래가 꼬이는 분위기가 보일 때면 한국당을 조준한 문 대통령의 공세 수위도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마치 “너희가 발목을 잡고 있다”며 책망하는 것처럼. 이는 여권의 내년 총선 전략과도 연결된다. “불의한 세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단호한 메시지를 통해 총선 승부처인 중도층을 향해 거듭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여기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까지 나서 총선 심판론, 국민소환제 등을 꺼내 전선을 긋고 한국당을 고립시키려 한다. 이런 측면에서 김 위원장은 귀인에 가깝다.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발로 차지 않는 한 그의 행보는 총선에서 여당 득표에 플러스 요인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대 저들’로 가르는 정치는 당하는 쪽의 분노를 축적하고, 더 강한 역풍을 부르기 마련이다. 대통령과 여권만의 날갯짓으로 평화를 물고 오기란 더욱 힘들다. 문 대통령 스스로 “남북 관계 진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남남갈등”(지난 2월 종교지도자 오찬간담회)이라고 토로하지 않았나. 멈춰선 국회에 현안이 쌓이고, 미·중 무역전쟁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위기 상황을 북쪽의 젊은 지도자가 돌파해 줄 수도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연설에서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은 서로 간 적대하는 마음”이라며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구조적 갈등을 찾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단에 따른 국민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의지 피력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치 실종으로 인한 국민 피해는 어찌할 것인가. 이해의 대상이 한국당일 수는 없는 것인가. 북한을 대하는 인내심과 포용력의 일부라도 떼어 여의도 협치 프로세스를 가동시킬 수는 없는 일일까.

지호일 정치부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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