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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장지영] 평생 일하는 사회의 공포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최근 불거진 연금 논란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지난 3일 재무성 산하 금융청이 발표한 ‘고령사회의 자산 형성·관리’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연금 생활을 하는 고령 부부(남편 65세 이상, 아내 60세 이상)의 경우 연금 수입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30년간 더 살기 위해선 약 2000만엔(2억2000만원)의 저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청 보고서 발표 이후 일본에서는 ‘정부가 연금 정책의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면서 거센 비판의 물결이 일었다. 아베 정권이 그동안 ‘100년 안심’이란 슬로건 아래 공적 연금만으로 노후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과 자민당의 어설픈 대응은 여론을 한층 악화시켰다.

입헌민주당 등 야권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아베 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을 참의원에 잇따라 제출했다. 자민당이 장악한 참의원에서 야당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연일 떨어지고 있다. 2007년 1차 내각 당시 연금 기록 분실 문제로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퇴진했던 아베 총리로서는 ‘연금 트라우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논란이 단기적으로 아베 정권에 타격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일본의 연금제도 개혁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크다. 국민이 현재 공적 연금만으로는 노후 생활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연금제도 개혁을 깊이 있게 바라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공적 연금은 크게 우리나라의 기초연금에 해당하는 국민연금, 정률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소득비례연금인 후생연금으로 구성된다. 약 164조엔(1770조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이며, 공적연금펀드인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에 맡겨 운영되고 있다. 최근 연간 적립금 운용에 따른 수익은 약 6조엔이다.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노년층에게 투입된 공적 연금 급부액은 55조1000억엔이다. 현 세대의 보험료 납부액 38조5000억엔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세금 12조7000억엔과 적립금 3조9000억엔이 투입됐다. 일본의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 현재 연금제도대로라면 2040년부터 적립액이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5년에 한 번 연금제도를 수정해 왔다. 버블경제 붕괴로 경기가 매우 나빴던 1999년을 제외하면 그동안 연금보험료를 꾸준히 올려 왔다.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은 대대적인 연금제도 개혁에 나서서 당시 연금액을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감소 등에 연동해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장치인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다. 연금제도 개혁 때문에 고이즈미 정권은 이후 선거에서 패했지만 일본의 연금제도를 안정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2015년 일본 정부는 교사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사학연금을 후생연금(직장인연금)에 통합시켰다.

아베 정권은 집권 이후 수급자의 연금액을 서서히 축소하는 대신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연금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일본 정부가 2013년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린 데 이어 올해 다시 70세로 늘린다는 방침을 결정한 것은 바로 연금제도와 관련이 있다. 70세 정년 연장은 노년층에게 직접 돈을 벌도록 해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최대한 뒤로 미루겠다는 취지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자민당 총재 3선에 나서면서 ‘평생 현역사회’(生涯現役社會·생애현역사회)를 선언한 것은 그 결정판이다. 평생 현역사회란 단어는 언뜻 좋게 들리지만 연금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죽을 때까지 일하는 사회를 뜻한다. 일본 국민은 최근 연금 논란으로 평생 현역사회의 공포를 확실히 인식한 것 같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일해야만 하는 일본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은 한국의 그리 멀지 않은 미래다.

장지영 국제부 차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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