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이하(U-20) 최고의 축구 선수에 ‘슛돌이’ 이강인(18)이 선정됐다. 40년 전 디에고 마라도나, 14년 전 리오넬 메시가 올랐던 바로 그 자리다. 경쟁자들보다 두 살 어린 선수가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골든볼’의 주인공이 된 것은 메시 이후 처음이다.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FIFA U-20 월드컵 준우승에 기여한 이강인이 16일(한국시간) 대회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거머쥐었다. 메시와 마라도나 외에도 세르히오 아궤로(2007·이상 아르헨티나), 폴 포그바(2013·프랑스) 등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은 스타들이 받았던 상이다. 아시아 선수로는 아랍에미리트의 이스마일 마타르(2003)에 이어 두 번째다. 축구사에 이름을 남긴 이강인은 “골든볼은 내가 아니라 우리 팀이 받은 상”이라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개막 전부터 FIFA가 선정한 ‘월드컵에서 빛날 10명의 선수’에 포함됐던 이강인은 실전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선보였다. 자신 있는 개인기로 남미와 유럽 선수들을 무너뜨렸고, 창조적인 패스로 경기 흐름을 뒤바꿨다. 경기를 생중계하던 한준희 KBS 해설위원이 “지네딘 지단을 떠올리게 한다”고 극찬할 정도의 플레이였다. 이강인은 결승전 득점을 포함해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최다 도움 1위에 올랐다.
한국의 명실상부한 키플레이어 이강인에게는 대회 내내 견제와 방해가 잇따랐다. 하지만 발렌시아 CF 소속으로 프리메라리가 1군 경험이 있는 이강인은 거친 태클과 몸싸움을 잘 버텨냈다. 역으로 파울을 얻어내 영리하게 흐름을 끊거나 시간을 벌곤 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감정을 누르고 잘 대처했다. 어린 나이에서 보기 힘든 차분함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장전을 거치며 결승까지 이어진 강행군을 뛰어난 체력과 회복력으로 문제없이 소화했다.
남다른 애국심으로 차기 국가대표 주장 감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10살 때 스페인으로 축구 유학을 떠난 탓에 한국말이 유창하지는 않지만,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16강 한·일전을 앞두고 이강인은 “동료와 관중들 모두 애국가를 크게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이번 대회에서 착용한 그의 신가드(정강이 보호대)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런 이강인을 동료들은 ‘막내 형’이라고 부르며 따른다.
축구 샛별의 탄생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들썩였다. FIFA는 이강인의 골든볼 수상 소식을 전하며 “한국에서 가장 어린 선수가 경기 리듬을 조율하며 결정적인 패스를 공급했다”고 평했다. 소속팀 발렌시아는 구단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 팀에 골든볼이 있다. 이강인은 최고”라고 자랑했다.
진가를 뽐내며 전 세계에 눈도장을 찍은 이강인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발렌시아는 이강인과 재계약하며 8000만 유로(약 1068억원)의 바이아웃(최소 이적료 조항)을 설정했지만, 여러 구단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명문 AFC 아약스로의 이적설이 불거졌고 프리메라리가의 레반테 UD 등과도 연결되고 있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강인은 17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환영식에 참석해 팬들과 만난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