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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김준엽] E3에서 본 게임의 미래



세계 최대 게임전시회 중 하나인 E3는 올해 유독 눈길을 끌었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콘텐츠와 플랫폼 두 가지 관점에서 새로운 게임의 미래가 다가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콘텐츠 관점에서 게임과 영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게 명확해졌다. 내년 출시 예정인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을 소개하는 무대에는 유명 할리우드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등장했다.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리브스는 게임 내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3에서 공개된 사이버펑크 2077 예고 영상에는 실제 리브스와 거의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왔다. 모션 캡처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물 수준의 모습이 게임 내에서 구현 가능해졌다. 여기에 미래 사회에 대한 과감한 상상력까지 더해지면서 요즘 나오는 게임은 ‘영화 같다’는 느낌을 준다. 사이버펑크 2077은 신체 개조가 보편화된 2077년 ‘나이트 시티’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줄거리로 한다. 리브스는 “나는 매력적인 이야기에 언제나 매료된다”고 게임에 참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했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게임의 인상이 강렬했다. 이 게임은 인공지능(AI)을 갖춘 로봇이 인간의 생활에 들어왔을 때를 가정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했을 때 일자리 문제, 인간과 로봇의 공존, 무엇이 인간다움인가 등 다양한 생각이 들게 했다. 최근까지 봤던 어떤 영화보다 강하게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를 갖췄다.

영화 분야에서도 게임 요소를 접목 중이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인터랙티브 요소를 도입했다.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중요한 지점에서 시청자가 주인공의 선택을 결정한다. 시청자의 결정이 누적돼 마지막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게임을 하듯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5G가 보편화하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콘텐츠가 늘어나면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흐려지는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영화든 게임이든 결국 지향하는 것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관점에서는 ‘클라우드 게임’이 눈에 띄었다. 올해 3월 구글이 ‘스타디아’를 선보일 때만 해도 물음표가 많았지만, 올해 E3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 유비소프트 등이 클라우드 게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선보이면서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확신을 심어줬다. 머지않아 넷플릭스를 보듯 스마트폰에서 게임을 설치하지 않고 스트리밍으로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클라우드 게임은 우리나라 기업들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클라우드 게임은 클라우드 서버에서 게임을 구동해 영화를 스트리밍하듯 사용자에게 전송하는 방식이다. 사용자가 많아지면 대규모 클라우드 서버 설치가 필요하다. 중앙처리장치(CPU), D램, 낸드 플래시 등 반도체 수요가 급증해 ‘슈퍼 사이클’이 다시 올 가능성이 있다. 또 지연속도가 짧은 네트워크 구축도 필수적이다. ‘배틀 그라운드’처럼 여러 명이 대결을 벌이는 게임은 지연속도가 없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한 우리나라는 클라우드 게임이 활성화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연관된 분야에서 시장 선점을 위해 분주히 움직일 때다.

클라우드 게임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플랫폼을 장악당하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지난 10년 스마트폰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구글과 애플이 독점하는 앱스토어 때문에 우리나라 게임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내야 했다. 지금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을 준비하는 건 모두 해외 업체들이다. 어느 순간 클라우드 게임이 대세가 되면 우리나라 게임 업체들은 해외 업체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는 게 보이는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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