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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민태원] ‘한국판 쥴링’이 걱정된다



요즘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의 핫한 관심사가 ‘쥴(JUUL)’이다. 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쥴링(Juuling)’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액상형 전자담배다. 과일맛 나는 니코틴액이 든 카트리지(팟·pod)를 디바이스에 끼워서 가열해 나오는 증기를 마시는 형태다. 연초잎을 태워 피우는 궐련과 달리 담뱃재가 없다.

2015년 미국에서 출시된 쥴은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흡연 입문’을 조장한다”는 논란을 낳았다. 아니나 다를까. 3년 만에 미국 전체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의 70%를 점유했다. 쥴이 나온 이후로 미국 고교생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이 2017년 11.7%에서 지난해 20.8%로 1년 만에 무려 78% 증가했다(2018년 미국 청소년 담배서베이). 바로 그 신종담배가 지난달부터 한국에 들어와 팔리기 시작했으니 담배를 입에 댈 연령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좌불안석일 수 밖에 없다.

며칠 전 국회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견본으로 전시돼 있는 쥴을 볼 기회가 있었다. 매끈한 금속재 디바이스는 담배라기보다는 USB(이동식저장장치)를 연상케 했다. 디바이스는 실제 USB처럼 노트북이나 스마트폰과도 연결해 충전할 수 있다. 사용할 때 입에서 과일향이 나 몸에 해롭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영어 ‘스모킹(smoking)’ 대신 ‘쥴을 피우다’는 의미의 쥴링이란 말이 왜 생겨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지에 민감한 청소년이나 여성을 타깃으로 한 제품임이 명백했다.

담배회사들은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신종담배를 내놓을 때 늘 청소년을 노린다. 과거 한 외국계 담배회사의 내부문건에서 드러난 ‘오늘의 10대는 내일의 잠재적 고객이다(Today’s teenager is tomorrow’s potential regular customer)’라는 문구가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3세대 전자담배로 분류되는 쥴도 담배회사의 이런 치밀한 마케팅 전략을 따른 것이다. 국내에서 시판된 쥴의 니코틴 함량은 0.7%로 미국에서 팔리는 제품(1.7%, 3%, 5% 등)보다 낮다. 화학물질관리법은 니코틴을 독성물질로 분류해 함유량을 2%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기존 흡연자는 쥴을 사용해도 담배 특유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현재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 특히 비흡연 청소년들이다. 쥴이 이들의 ‘흡연 진입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처음 흡연 경험 연령은 평균 만 13세, 흡연자로 고착되는 매일 흡연 시작 연령은 만 13.9세다. 중학교 1, 2학년쯤에 해당한다. 이들은 담배 맛보다 쥴의 예쁜 색깔과 디자인에 더 끌릴 게 뻔하다. 호기심에, 친구 권유로 한번 피웠다가 점점 니코틴에 중독되고 흡연의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특히 신종 전자담배를 통한 청소년기 흡연 입문은 이후 일반 궐련을 함께 피우는 ‘중복 흡연(dual use)’, 액상형 전자담배와 일반궐련, 궐련형 전자담배를 같이 피우는 ‘삼중 흡연(triple use)’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한국판 쥴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2년 연속 상승(2017년 6.4%→2018년 6.7%)하고 있는 청소년 흡연율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2017년 5월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가 등장해 당시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으로 모처럼 형성된 금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2년 만에 한국판 쥴링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 걱정스럽다.

정부도 최근 신종담배 유행 등 흡연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담배 종결전’(Tobacco endgame·현재 38%인 성인 남성 흡연율을 장기적으로 5% 이하로 낮춤)을 선포하고 강화된 금연종합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청소년 노출이 많은 편의점 내 담배 진열 및 광고 금지, 담뱃값 인상 등의 대책은 빠져 아쉽다. 흡연 입문을 막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으면 담배 종결전은 백년하청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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