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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원재훈] 멧돼지 출몰지역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서울의 등산로 초입에 ‘멧돼지 출몰지역’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 경고판을 사이에 놓고 한쪽은 아파트 지역이고, 다른 쪽은 작은 마을의 꽃길이 보인다. 주말에 북한산 등반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발견한 마을 꽃길 때문에 멧돼지 출몰지역 산행을 잠시 미루고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간혹, 고층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느꼈던 아득한 절망감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 건물이 제시하는 높은 분양가 때문에 그런 것인지, 인간이 지상에서 너무 떨어진 높은 곳에 살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간은 땅을 밟고 살아야 된다는 아버지 말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고층아파트는 그 높이만큼이나 아찔하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저것이 21세기의 바벨탑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세기말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 개발 계획은 결국 아파트 중심 개발 계획이다. 주변의 신도시 주민들이 반대 집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삶에 들어선 것은 고층아파트보다 더 높은 욕망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의 주택은 60%가 아파트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아파트라는 개발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그 마을이 사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아파트와 대비되는 작은 마을의 꽃길이 눈에 들어온다. 산행을 하려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마을, 개발을 전혀 하지 않고 아름답게 변화하는 저층의 공간에서 골목길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마을 마을회관 앞에 서니 ‘산골마을’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이곳이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관리형 주거환경 개선 사업’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발을 거부하고 마을을 재생하겠다는 친환경 마을이다. 집으로 돌아와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니 서울시에는 모두 84개 마을이 저층주거지재생사업 지역이었고, 이곳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삶을 꾸리고 있었다. 또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비영리 민간단체 저층주거지재생사업단이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활기차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사업단 대표인 인향봉씨와 전화를 통해 이 사업은 주민들의 힘으로 활기찬 마을을 만들어가는 일이고, 결국 주민들이 답이라는 대답도 들었다. 그녀와의 만남에서 결국 이 사업의 주인공인 주민, 사람이 마을의 답이라는 말은 울림이 깊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숲에 가려진 작은 마을의 꿈틀거림, 흙과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친환경적인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젠 지구의 문제가 되어버린 환경운동의 중요성은 항상 개발운동의 경제성과 편리성에 부딪쳐 좌초되기도 한다. 그 현장 중의 하나가 아파트 지역이고 이러한 대세를 거스르는 건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일 거다.

하지만, 개발에서 벗어나 고층아파트 주변에 이런 마을들이 잘 자리 잡는다면 이미 형성된 대형 아파트 단지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좋은 도시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에서 벗어나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어쩌면 고급 타운하우스 지역보다 사람들이 더 살고 싶은 지역으로의 변신이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거단지는 아파트를 거쳐 고급 타운하우스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다면 말이다.

작은 꽃길 마을들과 정겨운 골목길들이 더 이상 밀려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러한 우려는 그날 만났던 산골마을의 대표님과 주민들의 표정을 보고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마을은 과연 어떤 마을일까. 아파트 당첨권이 로또 복권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 한발 벗어나고, 그러한 욕망을 멧돼지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숨 막히는 현실의 한편에서 숨 쉬는 작은 마을은 우리 주변에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원재훈(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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