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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남도영] 다뉴브강 비극과 작은 진전



허블레아니호의 비극이 발생한 것은 우리 시간으로 지난달 30일 오전 4시5분이었다. 주헝가리대사관이 사고를 알아차린 것은 1시간쯤 뒤였고, 45분 뒤인 오전 5시45분 외교부에 긴급 보고를 했다. 외교부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보고했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 관저를 찾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고 사실을 보고했다. 청와대는 정 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확한 시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첫 번째 지시를 내린 것은 오전 8시였다. 문 대통령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 구조 활동을 지시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본부장인 중대본이 구성됐다. 문 대통령은 첫 지시 3시간45분 뒤인 오전 11시45분 청와대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추가 지시를 내렸다. 이날 오후 소방 국제구조대, 외교부 직원, 해군과 해경 구조단이 헝가리로 출국했다. 강 장관은 다음 날인 31일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헝가리 외교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면담하고 구조 활동과 사고 조사 등에 협조를 요청한 뒤 2일 귀국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허둥지둥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여행을 주관했던 참좋은여행사는 사고 당일인 30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모두 다섯 차례 브리핑을 했다. 이후로도 매일 두세 차례 브리핑을 진행하며 여행객 가족들 지원과 현지 소식을 전했다. 참좋은여행사의 브리핑을 담당한 이상무 전무이사는 31일 오전 브리핑에서 “모든 질책은 사고 수습이 완료된 이후에, 추호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전무의 브리핑에는 “현지 대행사의 실수”라거나 “밝힐 수 없다”는 ‘모르쇠’ ‘미루기’ ‘발뺌’이 없어 불편하지 않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는 사망·구조·실종자 가족 49명이 호텔 3곳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상상하긴 쉽지 않다. 다뉴브강에서 구조작업을 지휘하는 송순근 구조대장은 2일 “제가 (브리핑 장소에) 오기 전에 가족들을 만나서 (구조진행 상황을) 설명해 드렸다”며 “가족들은 대원들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실종된 가족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다급함 속에서도 구조대원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당부가 귀를 잡는다. 사고 현장에서는 소방관·해군·해경 연합군인 긴급구조대원 27명이 다뉴브강의 빠른 물살과 싸우고 있다. 이상진 정부합동신속대응팀장은 1일과 2일 가족들에게 사고와 구조, 헝가리 수사 당국의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하루 한 차례는 정부가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상황을 숨김없이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 부다페스트 한인교회 문창석 목사, 김선구 선교사, 그리고 많은 헝가리 교민들은 생업을 미루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부다페스트로 날아온 가족들을 돕고, 현지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을 돕는다.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인터넷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났던 저주 어린 악담과 조롱도 이번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살펴본 기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5년 전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남긴 거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세월호를 통해 후진적인 국가 안전 시스템, 권력자의 민낯, 공무원의 무책임함, 익명으로 가려진 일부의 잔인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5년이 흘렀다.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많은 참담한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안전보다는 돈, 꼼꼼함과 엄격함보다는 ‘대충대충’이 빚어낸 후진적인 사고들이다.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은 아직 안전하지 않다.

허블레아니호의 사고는 진행 중인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비극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포착된 몇 장면은 작은 위안이 된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역량이 조금이나마 나은 곳으로 움직이려는 징후라고 말한다면 섣부른 얘기일까.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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