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뉴스룸에서-권기석] 식약처의 보수성은 왜 허물어졌나



미국의 논픽션 작가 프랜 호손이 쓴 책 ‘식품의약국의 내부(Inside the FDA)’를 보면 신약 허가권을 가진 당국은 늘 두 가지 실수의 위험에 처해 있다. 첫 번째 실수는 허가한 신약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는 1950~60년대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이 약은 독일에서 개발돼 입덧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많은 유럽의 임신부가 복용했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임신부 수천명이 팔다리가 없는 아기를 낳았다. 다만 미국은 이 비극을 피했다. 약의 안전성을 의심한 미 FDA가 이 약을 허가하지 않은 덕택이었다.

신약 허가 당국이 범할 수 있는 두 번째 실수는 이와 반대로 약을 허가하지 않았을 때 나타난다. 미 제약회사 임클론은 1990년대 중후반 대장암 치료제 ‘얼비툭스’를 개발했다. 이 약은 처음엔 FDA 허가를 받는 데 실패하고 2년 뒤 승인을 받았다. 성분 변경이 없었고 임상 결과도 전과 같았지만 FDA가 태도를 바꿨다. 암 환자들 입장에서는 FDA의 늑장 결정 탓에 2년간 치료 기회를 놓친 셈이 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임클론 주식을 산 투자자들도 수백만 달러 손해를 봤다. 임클론의 최고경영자가 앞서 2001년 FDA의 불허 발표 직전 이를 알고 자신의 주식을 매도해 주가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실수의 위험 사이에서 신약 허가 당국의 행동이 어디로 기울지는 자명하다. 당국은 첫 번째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신약의 부작용이 불러올 피해를 더 두려워한다는 얘기다. 눈에 보이는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당국을 훨씬 더 강하게 비난하기 때문이다. 팔 다리가 없는 아기를 낳은 임신부가 치료 기회를 놓친 암 환자나 돈을 잃은 투자자보다 더 오래 허가 당국을 원망할 것이다. 신약 허가 당국은 근원적으로 보수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오랜 기간 보수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때때로 ‘갑질’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식약처는 강한 규제기관이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사태는 식약처의 그런 보수성이 허물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인보사 허가 과정에서 식약처의 보수성은 발휘되지 않았다. 2017년 4월 4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소분과 회의 회의록에는 ‘단지 증상완화를 위해 유전자치료제(인보사)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식약처가 인보사의 효능이 연골 재생이 아니라 증상 완화에 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연골 재생 기능을 위해 넣었다는 연골 유래 세포에 대해 의심하는 ‘보수적’ 태도를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달여 뒤 심의위원을 교체하고 다시 회의를 열어 ‘인보사를 허가할 타당성이 인정된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이 과정은 여러 질문을 낳는다. 한 차례 부적절 판정을 받은 신약에 대해 두 달 만에 회의를 여는 일은 통상적인 것인가. 추가된 심의위원은 어떤 사람들인가. 2017년 4월부터 6월 사이 식약처 안에서는 인보사를 둘러싸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가. 보수적인 식약처가 인보사 허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풀려야 하는 이유는 제2, 제3의 인보사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제약·바이오산업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속성을 갖고 있다. 일단 판매 허가를 얻으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수십년간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 당국의 허가에 제약·바이오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다. 판매 허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유혹이 늘 도사리고 있다. 이를 막아낼 보루는 식약처의 보수성이다.

식약처는 인보사 허가 과정의 의문에 관한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시민단체가 식약처를 고발해 수사가 시작될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식약처의 보수성이 허물어진 이유가 명확히 밝혀지길 바란다.

권기석 사회부 차장 keys@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