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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주화] 지하철 냄새 나는 사람들



영화 ‘기생충’ 개봉일인 30일 오전 7시30분 서울 시내에서 가장 먼저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을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영화관에 와 있었다. 영화에는 가난한 기택(송강호)네와 부자인 박사장(이선균)네 두 가족이 나온다. 이들의 빈부는 반지하와 대저택이라는 주거 공간으로 대비되고 냄새를 통해 서로를 느낀다. 박 사장은 “넘을 듯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다”며 자신의 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피고용인 기택의 태도에 안심한다. 하지만 “지하철 타는 분들 특유의 냄새가 난다”며 그 선을 넘어오는 기택의 냄새를 불쾌해 한다. 나는 지하철이라는 말에 멈칫했다. 나 역시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의 인상을 되짚어봤다. 지방 소도시에서 대학입시를 위해 처음 서울에 왔을 때다. 나는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출근 시간 1호선 플랫폼으로 올라오는 사람들과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내려가는 사람들이 환승 통로를 빼곡 채운 모습은 터지기 직전의 순대 속처럼 징그러웠다.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았다. 학교를 마친 뒤 나는 회사를 다니게 됐고 별수 없이 지하철을 타게 됐다. 만원 지하철은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를 지치게 했고, 일과를 마친 뒤에는 피곤을 가중시키는 교통수단이었다. 지긋지긋했다. 다른 승객과 부대끼고 싶지 않아 일부러 일찍 또는 늦게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 일이 잘되지 않아 괴로운 퇴근길이었다. 먹고사는 게 왜 이렇게 외롭고 힘든지 종일 곱씹은 날이었을 것이다. 이 도시의 낯선 학생, 아줌마, 할머니, 아저씨, 회사원으로 둘러싸인 지하철 객차 한가운데 서 있었다. 누군가의 땀 냄새, 어떤 이의 체취, 또 다른 이의 열기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나는 문득 그곳에서 안도감을 느꼈고 어떤 위로를 받았다. ‘이 많은 사람들도 다 나처럼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또 지친 몸을 누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지금도 만원 지하철을 타면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이 난다. 여전히 여러 대를 보낸 뒤 한산한 지하철을 타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맡은 냄새, 봤던 풍경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 냄새는 기생충에서 중요한 모티브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개봉 전 간담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동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행기만 해도 퍼스트와 이코노미로 나뉜다. 가정교사 등 이 영화에 나오는 상황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이라고 했다. 영화에서 냄새는 부자인 박사장네와 가난한 기택네의 계급을 가르는 표지다. 박사장은 이 냄새에 불쾌감을 느끼고 기택은 이 불쾌감을 드러내는 박사장에게 적개심을 품는다. 지하철을 포함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사람은 수도권에서만 매일 평균 719만명. 수도권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냄새는 대다수의 냄새다. 박사장처럼 기사 딸린 고급 외제차를 타는 사람은 극소수다. 박사장에게 지하철 냄새는 멸시의 대상이지만 대다수에겐 소중한 삶의 체취다.

‘서울살이는’이란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의 노래가 있다. ‘서울살이는 조금은 힘들어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앞에/ 앉은 사람 쳐다보다가도/ 저 사람의 오늘의 땀/ 내 것보다도 짠맛일지 몰라.’ 지하철에 지친 몸을 실은 화자가 함께 탄 낯선 이를 바라보면서 그가 보낸 하루가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노래한다. 우리가 어느 날 지하철에서 느낄 만한 연민과 공감이 느껴진다. 기택이네처럼 우리에게서도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가 날 것이다. 가난한 기택의 아들 기우는 반지하에서 올라와 땅 위에서 사는 꿈을 꾼다. 봉 감독은 “영화가 사회적 도구가 되는 건 싫다. 영화는 영화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도 영화를 본 뒤 묻게 된다. 우리가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질 길은 없는지, 기택네에게 허락된 계층 사다리는 어디에 있는지.

강주화 문화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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