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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한승주] BTS 보유국



#최근 독일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더 보이스 키즈’. 열네 살 독일 소녀가 한국어 노래를 시작하자 심사위원석이 술렁였다. 이거 어느 나라 말이지 하는 반응. 이내 진심이 전해지는 감성과 노래 실력에 소녀는 합격했다. 그가 부른 노래는 방탄소년단(BTS)의 ‘전하지 못한 진심’이다. “K팝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는 소녀에게 심사위원은 “진짜 대단하네. BTS에 영향받아 한국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으니”라고 감탄했다.

#얼마 전 해외 아미(Army·BTS 팬클럽)가 광주 5·18기념공원을 찾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이들은 BTS 때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알게 됐다. BTS의 노래 ‘마 시티’에는 ‘062-518’이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062는 광주 지역번호, 518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뜻한다. 의미가 궁금한 해외 팬들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한다. 단순한 노랫말을 넘어 한국 현대사까지 탐구하고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BTS의 영향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이들은 그 어떤 정부에서도 못한 일을 해내고 있다. 전 세계 아미들은 BTS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 BTS의 나라가 궁금해 한국 문화와 역사를 공부한다. 1년 전만 해도 신기한 현상 정도로 바라보던 미국은 이제 BTS를 대중음악계의 주류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경영학과 수업의 한 장면. 대형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에게 교수는 ‘4500만, 24시간’이라는 단어를 제시하며 이게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잠잠하던 학생들은 토론 끝에 BTS가 유튜브에서 세운 조회 수 기록임을 알게 된다. 교수는 “만약 당신이 BTS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지금의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BTS는 지난달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뮤직비디오로 유튜브 역대 최단기간(37시간 37분) 1억뷰 기록을 달성했다.

BTS는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시상식을 시작으로 3주에 걸쳐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저지에서 스타디움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들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현지 방송들은 BTS에게 특별한 의미를 선사하기 위해 무척 공을 들였다. 얼마 전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BTS의 상징색인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BTS가 이 빌딩에 있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환영하는 의미다. 라디오 진행자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해 색깔을 바꾼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15일 CBS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는 BTS 공연을 비틀스 헌정 무대로 꾸몄다. 사회자는 “비틀스 이후 1년 안에 3개 앨범을 ‘빌보드 200’ 1위에 올린 첫 그룹”이라고 소개했다. 비틀스가 1964년 미국 TV 데뷔 무대를 가진 뉴욕 에드 설리번 극장. BTS 일곱 멤버는 이곳에서 검은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퍼포먼스를 했다. 관객은 비틀스 팬클럽 ‘비틀 마니아’를 재현한 ‘BTS 마니아’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다. 방송은 예전의 향수를 전하는 듯 흑백 화면으로 나갔다. 이 무대를 본 비틀스의 나라 영국이 반응했다. 리버풀에 있는 비틀스 상설 전문 박물관 ‘비틀스 스토리’는 BTS를 공식 초청했다. ‘제2의 비틀스’라는 수식어, 우리는 오히려 조심스러운데 미국과 영국에서 먼저 인정하는 분위기다.

BTS가 한국인이고 대한민국이 ‘BTS 보유국’인 것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날들이다. BTS는 이번 주말, 아마도 그들 인생에서 가장 꿈꿔왔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 선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곳은 가수들에겐 꿈의 무대다. 비틀스, 퀸, 마이클 잭슨 등 전설들이 거쳐 간 무대에서 BTS가 자신들의 가치를 또다시 증명해주길 기대한다. 동시대에 살면서 이들이 새로 쓰는 K팝 역사를 지켜보는 것, BTS 보유 국민의 특별한 기쁨일 것이다.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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