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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최연하] 먼지가 예술이 된 까닭은



현대미술이 개화한 데에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기성품)’로 지칭되는 사건을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1917년 뉴욕의 머트사에서 구입한 소변기를 뒤샹은 자신이 회원으로 있던 독립미술가협회의 전시회에 내놓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 잡지에 발표한다. 기존의 미술관은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사물들이나 혹은 귀족들의 사치품이 전시되던 때였다. 뒤샹은 일상적 사물들 중에서도 고급예술 전통과는 단절된 소변기를 미술관에 놓음으로써 미술의 혁신을 불러왔다.

이어 뒤샹은 1920년에 그의 친구인 만 레이와 함께 ‘먼지 배양하기(Dust Breeding)’라는 작품을 제작한다. 뒤샹의 작업실에 있는 큰 유리에 1년간 쌓인 먼지가 바로 작품의 주제이자 소재가 됐고, 당시 사진 작업을 했던 만 레이가 2시간에 걸쳐 촬영하며 공동 작업이 됐다. 사진 촬영 후에 뒤샹이 먼지들을 깨끗하게 닦아냈기 때문에 오직 사진으로만 남게 된 이 ‘먼지 작품’은 이후 뒤샹의 작업세계를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먼지의 흔적을 빛의 예술인 사진이 기록했다는 것, 먼지가 쌓여 기이한 형상을 만든 것, 무엇보다 뒤샹의 손을 거치지 않고 탄생된 작품이라는 점 등은 미술의 가치위계를 재설정하며 새로움이 무엇인가에 대해 역설한다. 뒤샹의 레디 메이드는 미술과 미술관의 개념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기존의 패러다임 전체를 혁신시킨 사건이었다. 100년 전에 뉴욕에서 뒤샹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탄생한 ‘먼지’가 최근 5년간 한반도에서도 기승을 부리는 기이한 사태에 주목한 새로운 책이 나왔다.

바로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장재연 지음, 동아시아출판)이다. 30년 넘게 미세먼지를 연구한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시대에 먼지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철저한 분석을 통해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미세먼지를 두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에 몰랐던 진실들을 하나하나 밝혀낸다. 정부의 미세먼지 비상대책의 오류와 부정확한 미세먼지 예보 모델뿐만 아니라 미국보다 과도하게 높은 미세먼지 기준과 어느 순간부터 중국발로 둔갑한 미세먼지의 출처, 잘못된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파되는 가짜 정보를 낱낱이 짚어낸다.

미세먼지 오염이 과거에 비해 최악이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나쁜 수준은 절대 아닌 상황에서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필수품이 되고, 휴대용 공기정화장치와 산소캔이 속속 출시되는 형국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의 시선에 공포를 조장하고 상품이 돼버린 미세먼지 정국은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는 래디컬한 외침을 하게 했다. 저자는 ‘마스크 나눠주기나 공기청정기 설치 같은 업자들이나 돕는 선심성 사업에 세금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이는데’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미세먼지 천동설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 마스크를 벗긴 한 남자의 이야기는 예술의 전통 전체를 부정하고 나선 뒤샹의 ‘먼지 배양하기’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먼지를 키울 수 없어, 여보게 그렇지 않은가?” 만 레이가 뒤샹의 ‘먼지’를 촬영하며 한 말이다. 먼지는 모든 미술작품의 적이다. 특히 사진에 달라붙은 먼지는 제거 대상이다. 하지만 뒤샹은 1년간 쌓인 먼지를 보며 ‘존중 받아야 할 먼지 키우기(Dust Breeding, to be respected)’라는 역설적인 문구를 삽입해 미술과 미술관의 위계적 구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뒤샹과 만 레이의 공동 작업은 그 시대에 가치를 창출하는 자명한 코드들을 바꾼 새로운 시도였다. 먼지가 또 다른 먼지로 팔리며 기이한 먼지들이 배양되고 있는 정국에, 먼지가 예술이 된 100년 전 두 남자의 이야기와 환경운동을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한 남자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다.

최연하 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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