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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세욱] 리버풀이 매력적인 이유



지난 8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 안필드에서 열린 2018-19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4강 2차전. 리버풀 FC가 FC 바르셀로나를 4대 0으로 이겨 결승 진출을 확정했을 때 망연자실했다. 1차전에서 3대 0 승리를 거둔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의 팀이 대패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관중과 리버풀 선수들이 함께 목청껏 응원가 ‘You will never walk alone(YNWA·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니)’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래, 이 팀은 리버풀이지.” 그리고 14년 전의 경기를 떠올렸다.

기자는 축구보다 야구를 더 좋아한다. 야구팬 상당수가 비슷하겠지만 축구는 국가대표 경기 정도를 즐겨볼 뿐이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후 박지성이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하자 유럽리그에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2004-2005시즌 UCL 4강전에서 아인트호벤은 이탈리아의 AC밀란과 격돌했다. 새벽에 일어나 TV로 2차전을 보다 박지성이 멋진 골을 넣자 환호했다. 아인트호벤이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대표팀 경기와 다른 클럽 축구의 묘미를 느꼈다. 그래서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결승전도 챙겨봤다.

밀란의 상대가 잉글랜드의 리버풀이었다. 아인트호벤의 패배를 설욕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생전 처음 본 리버풀을 응원했다. 그런데 전반에만 3골을 얻어맞으며 0-3으로 끌려갔다. “무슨 결승전이 이렇게 싱겁냐”며 혀를 찼다.

하프타임이 지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다시 나올 때였다. 리버풀 선수들이 풀 죽은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그런데 리버풀 관중석에서 조금씩 어떤 노래가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삽시간에 경기장 전체에 울려퍼졌다. 뭔지 구슬픈 가락이었는데 떼창이 되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이 노래가 ‘YNWA’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팬들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리버풀은 기적처럼 후반에 3골을 연달아 넣어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고 승부차기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금도 회자되는 ‘이스탄불의 기적’이었다.

한국인의 국뽕(국가예찬) 기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리버풀 경기에 감동을 받았건만 박지성이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진출한 뒤에 리버풀은 그냥 ‘상대팀’에 불과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을 응원하느라 리버풀은 다시 뒷전이었다.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개인기에 매료된 뒤로 토트넘 경기 외에는 스페인 리그(프리메라리가)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간혹 리버풀 경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있었다. 경기가 느슨한 적이 없고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으며 팬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항상 뜨겁다는 점을. 패배한 선수들에게 팬들은 야유 대신 YNWA를 부른다. 마치 “고개를 들라, 너는 혼자가 아니니까”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1980년대 헤이젤, 힐스보로 경기장에서 총 100여명의 팬이 압사하는 비극을 통해 세계 어느 클럽보다 강한 연대와 배려로 뭉친 팀의 정체성은 경기 도중 쉽게 발견된다.

10여일 후면 토트넘과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한 마지막 대결을 펼친다. 본능적으로 토트넘을 응원하고 손흥민에게 반칙하는 리버풀 선수를 비난할 것이다. 손흥민에게 야유하는 리버풀 팬을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리버풀 선수들의 투혼과 팬들의 열정적 응원에 눈과 귀가 몰래 쏠릴 것도 같다. 토트넘이 많이 앞서가더라도 ‘혹시 또 다른 리버풀의 기적이?’라는 호기심이 발동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기 후면 유튜브에서 ‘YNWA’를 찾아 듣게 되지 않을까. 노래 속에 담긴 리버풀만의 정신과 매력을 음미하면서.

‘바람 속을 걸어요/ 비 속을 걸어요/ 당신의 꿈이 날아갈지라도/ 계속 걸어가세요/ 가슴에 희망을 품고/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니까요.’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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