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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장지영] 최고임금과 살찐 고양이법



최근 미국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디즈니 상속녀인 다큐멘터리 감독 애비게일 디즈니가 밥 아이거 디즈니 CEO와 직원들 간의 소득 격차를 “미쳤다”고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아이거는 지난해 회계연도에 연봉과 성과급을 포함해 모두 6560만 달러(약 748억원)를 받았다. 디즈니 직원들의 평균인 4만6127달러의 1424배에 달하는 것이다.

애비게일은 미국에서 최상위 1%에 속할 정도로 부유하지만 오래전부터 자신과 같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라고 주장해 왔다.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이 부유층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즈니 측은 “아이거의 보수는 90%가 성과에 기반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실제로 아이거가 취임한 2005년 주당 24달러였던 주가가 132달러로 올랐고 디즈니 시가총액도 지난 10년간 빠르게 증가했다. 디즈니 측은 또 “직원들은 시간당 최저시급(7.25달러)보다 두 배나 많은 15달러를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애비게일은 “CEO 등 임원들이 거액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근로자들도 그만한 자격이 있다”면서 “근로자들에게 단순히 최저시급보다 많이 주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최저시급은 살아가기에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현재 미국에서 CEO 연봉이 직원 평균 연봉의 1000배를 넘는 회사는 디즈니만이 아니다. 급여 컨설팅업체 에퀼라에 따르면 1000배 넘는 회사는 11개이며, 디즈니는 5위에 해당한다. 또 2018년 매출액 기준 미국 100대 기업 CEO의 연봉 평균은 1560만 달러(약 177억원)다. 근로자의 연봉 평균보다 254배 많았다. 2017년의 235배보다 커진 수치로 경영자와 노동자의 소득 불평등도가 더 높아진 것을 보여준다.

씨티그룹의 CEO 마이클 코뱃이 방송에 출연해 임금 격차를 옹호한 것은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코뱃은 일반 직원과 고위직 임원의 막대한 임금 격차가 근로의욕을 고취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도 젊은 시절엔 급여를 조금밖에 받지 못했지만 열심히 일한 덕에 고위직으로 승진했다는 것이다. 코뱃은 지난해 2420만 달러(약 283억원)를 받았는데, 씨티그룹 직원 평균 4만9766달러(약 5800만원)의 486배 수준이다. 업계에서 성공한 극소수에 속하는 코뱃의 발언은 비난을 받았다.

CEO 연봉의 적정성 논란과 관련해 미국에서 ‘살찐 고양이법’, 즉 CEO의 연봉을 규제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개인이 벌어들이는 연소득에 상한선을 정하고, 이 상한선을 최저임금에 연동시키는 ‘최고임금제(maximum wage)’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인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가 도입한 것이 최저임금제다. 최저임금제는 노동자가 빈곤을 면하고 인간의 존엄을 누릴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오늘날 최저임금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불평등한 경제 체제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의 노동 전문기자 샘 피지게티는 저서 ‘최고임금’에서 “최저임금제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최저임금을 낮게 유지하려는 자본가와 권력자의 압박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이 연동된 사회에서는 극빈층의 소득이 먼저 증가해야만 최고 부유층도 자신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불평등한 분배가 줄어들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회사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재벌 총수 연봉이 매해 많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살찐 고양이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지난 4월 부산지역 공공기관 임원 보수를 최저임금제와 연계해 기관장은 최저임금의 7배(약 1억4000만원), 임원은 최저임금의 6배(약 1억3000만원)로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기업이 아닌 공공 분야이긴 하지만 앞으로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장지영 국제부 차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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