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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사나짱’을 응원하며



지난 1일 일본에선 나루히토 왕이 즉위하고 레이와(令和) 시대가 개막됐다. 새로운 연호가 의미하는 것처럼 한·일 관계에서도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희망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찬란한 5월 날씨 같지 않다. 초계기 갈등과 과거사, 독도 영유권 문제 등으로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와중에 엉뚱한 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사나는 지난달 30일 SNS에 일왕 퇴위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올렸다. “헤이세이(平成) 출생으로 헤이세이가 끝난 것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헤이세이 수고했습니다.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작을 향해, 헤이세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시원한 하루가 됩시다”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 일본 연호를 언급한 것을 비판했고 언론은 ‘논란’ ‘반일정서 확산’ 등이란 자극적 제목을 붙여가며 보도했다.

그런데 사나의 이 짧은 감상이 비난받을 일인가. 일본인으로서 한 시대를 보내고 또 한 시대를 맞는 소회를 표현한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 시대 변화를 아쉬워하면서 산뜻한 새날을 맞겠다는 23세 사나의 다짐이 과거사와 무슨 관계인가. 헤이세이는 1989년 1월 8일부터 시작돼 30년을 이어왔다. 본격적인 한·일 교류의 시절이었다. 퇴위한 아키히토 전 왕은 친한파 아니던가.

트와이스는 한국 일본 대만 국적을 가진 멤버들이 하나가 돼 활동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다국적 멤버들로 팀을 구성해 그들의 무대를 한국으로만 국한하지 않았다. 한국의 그룹에 속해 있으니 오로지 한국을 위해서만 활동하며 생각까지 한국인 정서에 맞추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자 폭력에 가깝다.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 미나, 모모가 다수 일본인이 반일정서가 강하다고 여기는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음식을 먹으며 꿋꿋하게 그들의 재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참고로 나는 특정 걸그룹의 팬이 전혀 아니며 그들을 알지 못한다. 다만 어그러지고 있는 두 나라 관계 속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멤버들이 한솥밥 먹어가며 활동한다는 게 신기해 관심을 갖게 됐을 뿐이다. 최근 인기몰이에 나선 걸그룹 아이즈원도 역시 고맙다. 아이즈원도 한국인 멤버 9명과 일본인 멤버 3명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아이즈원은 올 초 일본의 한 예능방송에 출연해 자신들의 새해 소망을 담은 한자어를 쓰고 소개한 적이 있다. 일본인 멤버 사쿠라는 ‘도모다치(友達)’라고 썼다. 도모다치는 ‘친구’라는 뜻의 일본식 한자어다. 이런 말도 했다. “멤버들은 이미 가족 같은 존재다.” 사쿠라가 친구를 소원했다는 것은 한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팬을 향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와이스, 아이즈원은 위태로운 한·일관계를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다.

지난 2월 방한한 일본 니가타 성서학원 나카무라 사토시 원장은 “한국과 일본교회는 두 나라 사이를 잇는 다리가 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다리는 밟히는 존재”라면서 몇 명의 일본 그리스도인을 소개했다. 노리마츠 마사야스 선교사는 1896년 일본인 첫 선교사로 내한해 18년간 활동했다. 한국인들은 돌을 던졌으나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한옥에 살며 한복을 입었고 아들에겐 조선말을 먼저 가르쳤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불리는 다우치 지스코(한국명 윤학자), 여성 교육으로 가교가 됐던 후치자와 노에, 속죄적 구도자로 살았던 니시다 쇼이치 등의 인물도 있었다.

다리는 이어지고 있다.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면서 자신의 히브리어 지식을 과거 피해국 신학생들에게 전하는 무라오카 다카미츠 박사, 사죄의 마음으로 온 가족이 한국으로 이주해 목회하고 있는 서울 일본인교회 요시다 고조 목사 등이 그들이다.

나는 이런 분들을 통해 일본의 과거는 잊지 않으면서도 일본인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국의 정치적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은 서로 좋아한다. 이미 친구가 돼 있다. 한국인들은 댓글로는 넷우익을 방불케 하면서도 자신들의 SNS는 온갖 종류의 일본 경험기로 채운다. 오늘부터 사나와 사쿠라의 팬아저(‘팬이 아니어도 저장한다’는 뜻)가 돼볼까 한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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