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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남도영] AI가 국회의원 대체한다면



‘로바마(ROBAMA)’라는 인공지능(AI) 프로젝트가 있다. ROBAMA는 로봇과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이름의 합성어인데,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종합인공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개발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다. AI 분야의 권위자인 벤 괴르첼 싱귤래리티넷 대표 겸 핸슨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주도하고 있다.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괴르첼 대표는 “바둑이나 체스 등 한 분야에서 뛰어난 AI를 넘어 인간과 동일한 능력을 보이는 AGI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인공 로봇이 부정부패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장기적으로 국회의원을 대신할 수 있는 AI는 알파고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알파고는 입력된 바둑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스스로 연구·학습하면서 단시간 내에 전 세계 최고의 바둑 고수가 됐다. 하지만 정치적 결정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과정이다. 게임이 아닌 인간의 선택, 감정, 이해관계의 조정, 사회 발전과 같은 개념들을 아울러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치 AI’가 가능하려면 두 가지 핵심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올바른 정책 평가다. 정책을 고치거나 새로운 정책을 만들려면 기존 정책과 현실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국회가 패스트트랙에 태운 선거법 개정안을 예로 들면, 기존 선거법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의 선거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선거법 때문에 국민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결정이 얼마나 왜곡되는지를 정량화해야 한다. 정치 AI는 올바른 평가를 위해 선거와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 언론 보도, 학자들의 의견, 외국의 사례와 같은 다양한 통계 수치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할 수 있는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두 번째는 ‘국민이 원하는, 국민들에게 유익한 정책 선택’이다. 평가를 했으니, 국민들에게 가장 유익한 정책을 선택하는 알고리즘이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4당이 합의한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국민에게 유리한지, 자유한국당이 뒤늦게 내놓았던 비례대표 폐지와 국회의원 정수 축소가 국민에게 유리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평가와 대안 마련이 쉬울 리 없지만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충분한 데이터와 기준,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이 더해지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먼 미래의 일인 것 같지만 그리 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뉴질랜드의 AI 전문가들은 2년 전인 2017년 세계 최초의 ‘AI 정치인’ 샘(SAM)을 선보였다. 진짜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벤트였다. 샘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유권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슈와 선거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샘은 “내 기억은 무한하므로 당신(유권자)이 내게 말한 것을 잊거나 무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나는 인간 정치인과 달리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사람의 입장을 편견 없이 고려한다”고 답했다.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한다. 유권자들은 고만고만한 후보들 중에서 그나마 덜 나빠 보이는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막말도 하지 않고 의전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고 주먹도 쓰지 않는 정치 AI나 AI 정치인이 등장하면,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요즘과 같은 정치 불신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새로운 선택을 하겠다는 움직임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줄 몰랐고,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릴 줄도 몰랐다. 괴르첼 대표는 2025년까지 정치적 결정이 가능한 AI 로바마를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기술적 특이점’이 오는 시기를 2029년이라고 예측했다. 이들의 말을 믿는다면, 국회의원 선거는 3번, 대통령 선거는 2번 남았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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