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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김준엽] 얼리 어댑터와 베타 테스터



5G 상용화 한 달이 지났다. 속도는 LTE보다 별로 빠르지도 않고, 딱히 도드라지는 5G 킬러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판 속에서도 가입자는 26만명을 넘어섰다. LTE 때와 비교해 가입자 증가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이는 이동통신사의 5G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려는 ‘얼리 어댑터’가 많다는 의미다. 얼리 어댑터는 남들보다 빨리 신제품을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5G 서비스 초기 불만에 대해 이통사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망 구축 속도와 서비스 품질이 정비례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5G 주파수는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지만, 도달 거리는 LTE 주파수에 비교해 짧다. 즉 LTE 때보다 더 많은 기지국을 촘촘하게 설치해야 제대로 된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당장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이통사 내부에서는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밤낮없이 준비했는데 초기에 일부 미흡한 부분을 너무 부각한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현재 5G 서비스가 괜찮은 수준인지 평가할 만한 객관적인 참고 자료는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를 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불만이 많다는 건 이통사가 생각하는 5G 서비스, 완성도와 사용자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차이가 꽤 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기꺼이 비싼 돈 주고 직접 사용하는 사용자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베타 테스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비스 초기니까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양해하라는 식의 태도는 사용자를 베타 테스터 취급하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베타 테스터는 제품 출시 전에 미리 사용해보고 문제점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얼리 어댑터와 베타 테스터는 다르다. 자발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얼리 어댑터는 충성고객이지만 잠재적인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얼리 어댑터는 자신의 사용경험을 유튜브 등을 통해 전하는 데도 적극적인 편이다. 서비스에 불만이 있으면 언제라도 안티팬으로 돌아설 수 있다. 부정적 여론이 확대되면 5G 서비스 확산 속도도 더뎌질 수 있다.

세계 최초 폴더블폰인 삼성전자 갤럭시 폴드는 리뷰어들의 문제 제기로 미국 출시가 연기됐다. 보호필름을 제거했더니 디스플레이 불량이 발생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삼성전자는 제품 특성상 보호필름을 임의로 제거하면 안 된다며 사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제품을 좀 더 보완해서 내놓겠다며 출시 연기를 결정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시장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더 높은 거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제기된 문제점을 보완해 폴더블폰을 시장에 내놓는 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다행이다. 5G, 폴더블폰 모두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동안 선진국이 간 길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였던 한국 기업이 세계 최초로 길을 만드는 ‘퍼스트 무버’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 당연히 예전보다 더 힘들다. 경쟁 관계에 있는 이해당사자들의 견제도 심하다.

경제 상황은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0.3%로 역성장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하향 수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도체마저 실적이 위축되면서 경제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시점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시점에 5G나 폴더블폰처럼 새로운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주도권을 쥐는 건 매우 중요하다. 당장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5G의 경우 산업 전방위로 확산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또 새로운 산업을 주도적으로 정착시켰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방심하지 말고 보다 완벽히 해주기 바란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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