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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한국당 전략은 틀렸다



낡은 투쟁 방식으로는 여권을 이길 수도, 확장성도 없어
현 정권 지지했다 돌아선 중도보수가 이런 야당에 다시 시선 주지 않는다. 이들 지지 없이는 보수 재건이 불가능
‘지키려고 바꾼다’는 보수주의 신조, 한국당엔 왜 없는가


선거제 등 신속처리안건 지정과 좌파 독재에 항의하며 머리를 미는 의원들의 모습은 사뭇 엄숙했다. 삭발,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에 대한 저항의 표시이고, 약자가 더 이상 뭘 할 수 없을 때 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비장함과 결기를 보여주려는 것이니, 지지자는 물론 방관·반대하는 이들도 그렇게 느껴야 목적을 이룬다. 과문한 탓인지 주위에 물어봐도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 구체적인 것에 분노하고 여론이 한껏 달아올랐을 때 해야 하는데 일단 그런 게 없고, 무슨 가치와 어떤 명분을 위해 그랬는지가 모호하다. 오히려 정파색이 도드라져 보인다. 무엇보다 이런 행동이 통하는 시절이 아니다. 어찌보면 가장 편하고 전략 없는 옛날 방식이다.

삭발과 장외투쟁은 한국 정치가 처음 경험한 보수의 몰락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역설적인 장면이다. 보수의 재건, 나아가 재집권이라는 목표는 보수 정치의 지향점이다. 이 과정에서 내년 총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과 여당, 외곽세력 등 여권 전체는 내년 총선을 위한 세력 확장에 모든 걸 걸었다. 사실상 선거 캠페인의 수단이 많은 여권은 여러 정책과 발표하는 시기, 남북 관계, 적폐수사의 효능 같은 굵직한 1년 일정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자유한국당의 전략은 도대체 지향점이 어디인지, 보수 재건을 위해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이를 위한 구체적 수단이 뭔지를 잘 모르겠다.

자유한국당은 몇 가지 점에서 분석과 전망이 틀렸다. 그러니 전략도 틀릴 수밖에 없다. 첫째, 대여 투쟁의 지점을 잘못 골랐다. 여당이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지점에서 싸움을 걸었다. 이념 싸움, 갈라치기 싸움은 여권의 전공과목이다. 여권 상층부는 군사정권과 권위주의 통치 때부터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근육을 다져온 사람들이다. 이를 받쳐주며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이른바 86그룹은 이런 싸움의 전략과 방법에 이골이 난 운동권이다. 좌파 독재라며 이념 투쟁으로 몰고가는 정치싸움에서는 여권에 이길 수 없다. 조만간 공안, 낡은 세력, 과거 회귀 같은 프레임으로 받아칠 게다. 한국당은 장외투쟁의 기초체력이 모자라고 훈련도 안 돼 있다. 더구나 젊은층에게는 감흥 없는 낡은 방식이기도 하다. 생각이 있다면 가성비 낮은 이념 투쟁을 어떻게 모양 좋게 마무리할까 고민해야 한다.

둘째, 지금의 전략은 확장성이 없다. 확장성에 관한 한 경쟁력 제로에 도전하는 듯하다. 욱하는 감정의 대책 없는 강경 투쟁은 지지층을 더욱 결집하는 효과는 있다. 아마 지지층 사이에서나 더 강해지고 세력이 확장되고 있다는 희망만 섞인 분석을 붙들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탄핵 이후 최고 지지율이라는 수치가 있다. ‘닥치고 지지층’이 결집한 착시현상이다. 그 지지율은 곧 여당 지지율을 끌어올린다. 거대 양당의 동반상승 효과는 상식이다.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반쪽 대통령, 지지층만 보는 대통령’이라고 비난한다. 지금 그들의 대여 투쟁 방식도 태극기 부대 등 지지층만 보는 전략이다(전략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좀 민망하다). 모두 인정하다시피 중도보수층은 탄핵 정국에서 현 정권을 지지했다. 보수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이자 보수 재건의 가장 큰 전략적 목표이기도 하다. 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현 정권에 실망해 지지 철회 또는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 실망한 이유는 이념 편향과 국정운영의 무능, 정치가 다른 모든 분야를 압도해 발생하는 부작용, 과거만 얘기할 뿐 미래를 말하지 못하는 무능 등이다. 한국당은 이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정책과 미래를 따져야 하는데 이념 싸움과 감성적 시비, 철 지난 독재를 타령하고 있다. 이래선 지지를 철회했다고 중도보수층이 다시 시선을 주지 않는다. 무능을 지적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무능일 뿐이다. 이들을 잡지 않고서 재집권할 수 있는 방법은 단언컨대 없다.

셋째, 위 두 가지 이유의 당연한 결과지만 보수 혁신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야당이란 게 태생적 반대 세력이니 투쟁을 하지만, 재집권을 위한 차원에서도 성찰이 필요하다. 최소한 시늉이라도 있어야 한다. 이게 중도층을 향한 구애이기도 하고,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탄핵 때 중도보수층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복기해보면 정답은 나와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개 개혁 목소리를 배신으로 취급하거나, 무조건 강경이 최선책이라고 하는 이들 중에는 국정 전체나 정당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유불리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수 정치는 품격 있는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지켜내야 할 무엇인가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을 선별하고 지켜낼 방법을 내놓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과거 방식을, 자기들이 비판했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한 무능은 없다. 품격, 절제를 강조한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의 명언 “보수는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신조를 한국당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인가.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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