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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황교익] “노가리 노가리 원츄”



서울 을지로 노가리 생맥줏집의 임대차 문제로 언론이 온통 노가리로 도배되고 있다. 원래 노가리의 언론이 노가리를 다루니 나도 덩달아 노가리를 까고 싶어졌다. 노가리를 까는 술자리에 노가리는 필수이다. 일단은, 노가리의 어원에 대해 노가리를 풀어야 한다. 명태가 워낙 알을 많이 낳아 ‘씨앗을 마구 흩어 뿌리는 일’을 뜻하는 노가리가 새끼 명태에 붙었다는 노가리 정도는 기본이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일을 두고 ‘노가리 깐다’고 하는 것도 ‘씨앗을 마구 흩어 뿌리는 일’과 비슷하여서 그런 말이 만들어졌다는 노가리가 으레 덧붙여진다.

우리가 먹는 노가리의 원산지에 대한 노가리가 있어야 한다. 노가리를 러시아 해역에서 잡는데 일부 노가리는 중국에서 말리고, 중국인이 노가리 맛을 알면 우리 먹을 노가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염려성 노가리를 풀어낸다. 이어 함경도 원산의 황태가 강원도 진부령에 걸리게 된 까닭이 한국전쟁으로 인한 것이며, 함흥냉면 웃기로 올리는 생선이 원래 황태였는지, 아니면 가자미, 아니면 간자미였는지 한바탕 노가리를 깐다.

86세대는 노태우에 대한 노가리를 깐다. 1980년대 생맥줏집에서 전두환은 전대가리였고 노태우는 노가리였다. 물러서 물태우라는 노가리로 시시덕거리다가, 그때에, 6월항쟁 이후에, 어떻게 하여 노가리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회한의 노가리를 풀어내다가, 그래도 노가리 다음에 문민정치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느냐는 위안의 노가리로 마무리를 한다.

노가리를 앞에 놓고 까는 노가리에 사실을 확인하겠다고 덤비거나 윤리와 법률의 잣대를 들이대며 다투려고 하면 안 된다. 노가리에는 무한의 자유가 허락된다. 누구든 한때는 장롱에 금송아지를 숨겨둔 부자였고 또 연애박사였으며 또 천재소년이었다는 노가리를 깔 수 있다. 노가리의 세상에서는 독재자 대통령을 죽이고 빈부를 뒤집고 과학을 가벼이 멸시하여도 된다. 노가리는 왜곡과 과장과 조작을 넉넉하게 받아들인다. 서로 노가리인 줄 알면서 까는 노가리이기 때문이다. 노가리를 까고 난 다음 날 아침에 맨정신으로 만나 노가리를 반복하면 ‘경우 없는 놈’ 소리를 듣게 된다. 흉금 없이 허구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노가리의 세상이다. 그래서 노가리를 까는 생맥줏집은 언제나 정겹고 화기애애한 것이다.

인간은 원래 노가리를 즐기는 뇌를 가지고 있다. 허구를 만들고 이를 믿음으로써 인간은 지금의 문명세계로 진입하였다. 인간의 세상은 허구(노가리!)로 만들어졌다고 ‘폭로’하는 일은 철학자의 몫이고, 우리 소시민은 적절하게 노가리를 즐기며 살 뿐이다.

노가리의 세상은 원래 면대면 소통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노가리를 깔 때 불문율이 존재한다. 얼굴을 맞대고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끼리나 서로 노가리를 깐다. 노가리 현장에 없는 사람을 노가리 대상으로 불러낼 때는 그 노가리 대상을 만날 일이 없을 때나 가능하다. 만약에 평소에도 얼굴을 맞대는 사람을 노가리 대상으로 삼을 때에는 큰 분란을 감수하여야 한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었다. 얼굴을 맞댄 적도 없고 말 한마디 나눈 적도 없는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노가리 본능이 인터넷의 뉴스 댓글과 각종 게시판, SNS 등에 옮겨붙었다. 생맥줏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끼리나 하던 노가리를 얼굴 한번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까고 있다. 홀로 있는 것이 더 편하다며 면대면 소통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도 노가리 본능은 살아 있다. 인터넷은 노가리 놀이터가 되었다. 노가리는 남을 헐뜯을 때 더 짜릿한 법이고 표현의 강도가 높을수록 노가리 참여자의 집중도가 높아진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노가리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요즘은 언론도 노가리를 깐다. 사실 확인이 안 된 뉴스 노가리가 넘친다. 스스로 왜곡 과장 조작한 노가리를 뉴스라는 이름으로 가공하여 올린다. 언론의 노가리는 대중에게 공급되고 대중은 인터넷에 이 노가리를 찢어서 확산시킨다. 언론은 다시 대중의 쪼가리 노가리를 가공하여 뉴스 노가리를 만든다. 언론은 노가리로 돈을 벌어서 즐겁고, 대중도 심심풀이로 깔 수 있는 노가리가 인터넷에 즐비하여 즐겁다. 아니 놀 수가 없다. 자, 다 같이, “노가리 노가리 원츄.”

황교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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