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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박상익] 反日보다 克日이다



일본의 새 연호가 ‘레이와(令和)’로 결정됐다. 일본 역사상 최초로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을 전거로 한 연호라고 한다. 기사가 뜨자 한 네티즌은 일본 가나(假名)를 조롱하면서 ‘고유 문자도 없어서 중국 것이나 모방하는 못난 것들’이라는 댓글을 올렸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과 일본 문자에 대한 경멸이 짙게 배어있다. 그러나 생각해볼 점이 있다. 한글은 세종 치세인 1446년에 공표되었고, 일본의 가나는 8, 9세기쯤 처음 등장했다. 한글은 일본의 가나보다는 600년 뒤에, 서양어 알파벳보다는 2200년 뒤에, 당대 최고 언어학자들이 집현전에서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만든 ‘최신형 문자’다. 컴퓨터로 치면 최신형이다. 구형 컴퓨터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는 건 진부하다.

문자가 뛰어나면 경쟁력도 우수할까. 일본 교토산업대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고 농담할 만큼 영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70 평생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어서 여권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어밖에 할 줄 몰랐던 그는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일본어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취가 가능했음을 뜻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하다. 한국어만으로는 노벨상은커녕 석사 논문도 쓸 수 없다. 한국어는 학문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언어’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비유하자면 우리는 최신형 고급카메라(한글)를 들고 거들먹대면서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을 줄 모르는 풋내기다. 이에 비해 일본은 낡아빠진 필름카메라(가나)로 멋진 작품을 뽑아내는 노련한 프로사진가다. ‘번역 왕국’ 일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들이 자국어만으로도 세계 수준의 학문적 성과를 얻어낼 수 있도록 힘쓰는 동안, 우리는 한글 문자체계의 우수성 자랑만 했지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무관심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모국어를 ‘반쪽짜리 언어’로 방치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한글단체들이 “지금의 김(金), 이(李), 박(朴) 같은 성씨는 신라시대 중국 당나라 지배를 받을 때 뿌리 내린 중국식 성씨”이니 이제 우리 성과 이름도 우리 말글로 짓고 쓰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게 가능할까. 꼭 이렇게 ‘뺄셈의 언어’로 대응해야 할까. 굳이 신라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가 쓰는 자유(自由) 평등(平等) 사회(社會) 권리(權利) 정의(正義) 민주주의(民主主義) 시간(時間) 공간(空間) 의무(義務) 도덕(道德) 원리(原理) 철학(哲學) 등은 모두 19세기 일본 지식인들이 영어를 번역해 만든 한자어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서양을 가장 먼저 수용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중국도 우리와 같은 처지다. 이걸 다 없애면 우리의 어문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뺄셈의 언어’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영어도 한때 지독한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1066년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바다 건너 영국을 정복한 뒤 영국 왕실과 귀족은 프랑스어를, 백성들은 영어를 사용했다. 영어에 프랑스어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이름도 프랑스식으로 바뀌었다. 앨프리치(Alelfric), 애셀스탄(Athelstan) 대신 리처드(Richard), 존(John) 윌리엄(William) 등이 들어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어는 프랑스어로 인해 더욱 풍요로워졌다. 같은 뜻이지만 뉘앙스가 다른 다양한 단어가 영어에 유입됨으로써 사고의 명확성과 표현의 다양성을 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멜빈 브래그는 ‘영어의 힘’에서 이를 ‘영어의 달콤한 복수’라고 말한다. 영어가 세계어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덧셈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반일(反日)’은 쉬우나 ‘극일(克日)’은 어렵다. 맹목적 ‘반일’과 ‘뺄셈’을 외치는 한 일본을 추월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반일’보다 ‘극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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