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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한승주] ‘마약 대중화’에 대처하는 법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올해 초 개봉한 한국 영화 ‘극한직업’ 하면 떠오르는 대사다. 마약을 소재로 했지만 이 대사처럼 재기발랄한 코미디 영화에 무거움 따윈 없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통닭을 배달시켜 소금만 가져가고 정작 닭은 버린다.

소금으로 위장한 마약. 치킨을 주문하듯 마약이 일상에 퍼져 있다. 무려 1626만명(역대 한국 영화 최다 관객 수 2위)이 영화를 키득거리며 볼 때만 해도 몰랐다. 불과 두세 달 후 우리 앞에 펼쳐질 리얼한 마약의 세계를.

시작은 빅뱅의 멤버 승리였다. 승리가 공동대표로 있던 클럽 버닝썬에서 ‘물뽕’으로 불리는 마약이 사용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재벌가 3세들도 마약 투약 사건으로 구속됐다. 일부 엇나간 사회특권층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친근한 이미지의 방송인 로버트 할리가 충격을 던지더니 재벌 3세 황하나와 연예인 박유천이 구속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최근 경찰청은 2개월간 긴급 마약 단속을 실시해 마약류 유통 투약·사범 1677명을 검거하고 566명을 구속했다. 구속 인원은 지난해 동기 대비 84.4%가 늘었다. 이뿐 아니다. 2017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사범은 특정 집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 회사원, 일용노동자, 학생, 주부까지 다양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마약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 온라인에 마약을 칭하는 은어를 검색하면 1시간 안에 수령 가능하다는 광고가 뜬다. 거래방법은 점점 은밀해지고 있다. 일종의 ‘던지기’ 수법. 거래자끼리 직접 만나지 않고 특정 장소에 물건을 던져놓으면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주고받으니 마약사범을 잡기도 어려워졌다. 마약 전문 판매 사이트가 나오고 지불 방식도 지능화됐다. 추적이 어려운 암호화폐까지 등장했다. 결론은 이제 일반인도 마약을 구하려고 마음먹으면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은 마약사범이 인구 10만명당 20명 미만이면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이 청정국의 지위를 잃었다. 마약에서 안전한 나라라는 막연한 인식은 착각이었고, 사실상 마약 소비국이다. 이제 마약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직업·연령 제한 없이 일상에 파고든 것을 인정하고 대책 마련을 해야 할 때다. 마약 전담기구를 신설하고, 검경 등 유관기관의 공조로 단속체계를 강화하는 건 물론 재범 관리와 예방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마약이 ‘재범과의 싸움’이라고 입을 모은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마약은 중독성이 커서 한번 손을 대면 걷잡을 수가 없다.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고, 결국에는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의지나 결심만으로는 끊을 수 없다. 때문에 당뇨나 고혈압처럼 마약중독도 질병으로 보고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마약중독자가 꼭 치료받고 싶어도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시설이 태부족한 상황이다. 이들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결국엔 사회에 복귀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에 앞서 철저한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 특히 호기심 많은 청소년이나 마약의 늪에 빠지기 쉬운 연예인 등에게 약물중독에 대한 교육과 예방은 필수다. 마약은 내 몸과 정신을 망가뜨리는 약물이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단순 호기심이든 현실의 고통 때문이든 마약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개개인의 확고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영화 속 국제 마약밀매조직 보스는 “누구나 편의점에서 담배 사듯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의 대중화, 보급형 뽕의 시대를 내가 다 만들어놓았다”고 말한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됐다. 이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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