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민낯 드러낸 ‘사류 국회’



정치력 부재 속 난장판 된 국회… 33년만의 국회 경호권 발동 등 섣부른 결정도 한몫
입원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로 돌아갈 때까지 여야는 휴전하는 게 옳다


살얼음판을 걷던 국회에서 마침내 사달이 났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처리에 합의하자 패스트트랙에 반대해온 자유한국당이 초강력 투쟁을 선언해 아슬아슬하더니 결국 ‘식물국회’를 넘어 ‘동물국회’로 선회했다. 회의를 열어 법안을 처리해야겠다는 쪽과 날치기 법안 처리를 용납할 수 없다는 쪽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육탄전이 벌어지고,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빠루와 쇠망치가 등장하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국회의장은 33년 만에 국회 경호권을 발동, 국회 질서 회복 문제를 국회 경호와 경찰에 맡겼다.

협상 의지는 물론 자제력도 실종됐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을 겨냥해 ‘이성을 잃은 적폐세력의 본산’이라며 강공을 퍼붓고 있다. 한국당은 ‘여당이 빠루로 국회법 절차를 부숴버렸다’며 투쟁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국회의사당이 국회의원들의 꼴불견 행태로 난장판이 됐다. 서로 치고받는 것도 모자라 상대당 의원 등을 무더기로 고소·고발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반성은 없다. 양쪽 모두 상대를 꺾어야 한다는 살기가 등등할 뿐이다.

오래전, 국회는 이런 모습을 종종 연출했다.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린 의원과 ‘공중부양’ 의원이 있었고, 전기톱과 해머가 동원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동물국회’를 비롯해 ‘폭력국회’ ‘막말국회’ 등 낯뜨거운 수식어들이 붙었다. 국회 선진화법이 적용된 2012년 이후 몸싸움은 사라졌는데, 제 버릇 남 줄까 이번에 재연됐다. 삼류가 아니라 사류 국회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줬다. 국제적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문희상 국회의장의 처신이다. 의회주의자인 그는 20대 국회 후반기 입법부 수장이 된 뒤 협치를 유달리 강조해 기대가 컸다. 문 의장이 갈망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도 협치가 전제돼야 가능할 것이다. 취임 초 “(이제는) 정부·여당이 야당 탓을 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그런데 병상 결재에 이어 30여년 만에 국회 경호권을 발동했다. 최근의 국회 경호권 발동 사례를 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 제명(1979년), 유성환 전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1986년) 때다. 군사독재시절에나 있었던 걸 2019년에 답습한 이유를 모르겠다. 경호권 발동으로 질서가 회복되기는커녕 대립각만 날카로워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으로 패스트트랙 이전부터 독이 올라 있는 한국당을 더욱 자극했다. 섣부른 경호권 발동으로 문 의장이 역설한 ‘협치’는 어려워졌다. 더욱이 현안이 생기면 여야 만남을 중재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게 국회의장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문 의장의 경호권 발동은 국회사(史)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의 처신 역시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4당이 합의했고 여론도 긍정적이기 때문에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은데, 자신과 한지붕 밑에 있는 의원들조차 설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개특위 위원 교체와 안건 통과를 밀어붙이는 게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로서 올바른 행동인가.

국민들이 지켜보는 걸 뻔히 알면서 여야가 무모할 정도로 극한 대치국면을 이어가는 셈법에는 내년 총선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패스트트랙 파문 와중에 민주평화당, 정의당 그리고 김관영 등 바른미래당 일부와 연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총선을 앞두고 때로는 정책연대를, 때로는 선거연대를 모색하며 진보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셈이다. 민주당이 이들 중 일부 의원들을 흡수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당은 이른바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선명 야당’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보수세력을 결집하는 데 일정부분 성공했다. 친박과 비박 등으로 나뉜 내분도 당분간 수면 아래로 내려갈 전망이다. 유승민 의원 등 바른미래당 일부와 손잡을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내년 총선에서는 260석을 차지해 20년 집권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민주당과 문재인정부 실정에 대한 심판을 통해 박근혜정부 국정농단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한국당의 싸움이 치열할 것이다. 작금의 여야 대치는 총선 지형을 보다 유리하게 만들려는 전초전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데, 걱정이다. 지난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직후 외국 금융사들이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추고 있다.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로 성장동력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으나 정부는 위기감이 없다. 국회가 나서야 할 판인데, 지금 여야의 안중엔 국리민복이 없다.

여야는 입원 중인 국회의장이 회복할 때까지 휴전하는 게 옳다. 그리고 문 의장은 병세가 호전되는 대로 국회로 돌아가 여야 지도자들과 만나 동물국회를 협치국회, 일하는 국회로 바로잡아야 한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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