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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김남중] 로봇, 일자리, 기본소득



로봇과 AI(인공지능)가 사람의 노동과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얘기는 이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자동화로 향후 20년 사이 일자리의 14%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내용의 ‘노동의 미래’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적인 미디어 스타트업 ‘쿼츠’의 부편집장 새라 캐슬러가 쓴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라는 책에는 “토요타, 닛산, GM, 구글은 모두 2020년이면 자동화된 차량이 실제로 도로에서 운행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미국에서는 180만명이 트럭 운전으로, 68만7000명이 버스 운전으로, 140만명이 배달로, 50만5000명이 택시 등 승용차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차량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이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라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 정도 규모와 속도라면 일자리를 통해 삶을 영위하도록 설계된 지금 사회에 무시무시한 위협일 텐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변화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여의도 회사 근처의 지하상가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식당 앞에 설치된 키오스크(무인주문대)를 봤다. 대형 패스트푸드점에 하나둘 생기는가 싶던 키오스크가 어느새 자영업자 점포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달에 나온 몇 가지 뉴스도 로봇의 시대라는 게 한국에서도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배달의민족이 서울 잠실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자율주행 배달 로봇의 시범 운영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OK저축은행은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해 법원우편물 조회, 신용회복 신청, 개인회생 등록, 주소 보정, 서증 제출, 휴·폐업 조회 등의 업무를 자동화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이 AI와 대화하며 영어회화를 연습할 수 있는 영어교육 플랫폼을 구축해 올 하반기부터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로봇, 키오스크, AI 등 기계가 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술은 일자리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일 자체를 쪼개 일자리를 파편화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1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2004년 19만8900명에서 2017년 67만9300명으로 3.4배 증가했다. 일자리는 개인의 삶과 사회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근간이다. 이 일자리를 자동화와 디지털 경제가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만 외치고 있으면 되는 것일까.

기술 발전과 디지털 경제의 충격에 대응하는 노동·일자리 문제를 연구하는 ‘노동의 미래’라는 주제가 요즘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 성장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시대, 아무리 애를 써서 일자리를 만든다 해도 그보다 훨씬 빠르게 일자리가 사라지는 세상, 임시직이나 시간제,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긱(gig) 노동 등 비정규 노동이 새로운 표준이 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노동의 미래와 관련해서 빈번하게 거론되는 게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일자리 대신 현금을 제공하자는 주장이다. 흔히 극강의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일자리 대책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사회가 일자리를 제공하기 어렵다면 시민들이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논의나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에 공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올바르고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기술의 발전으로 배달 로봇과 자율주행을 시험하는 시대가 됐다면, 사회적으로 기본소득과 같은 대응을 논의하고 실험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29일부터 이틀간 경기도 주최 ‘기본소득 박람회’가 열린다. 기본소득에 대한 시민들의 대화를 여는 기회가 될지 주목된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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