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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세욱] 두 황제의 마지막 도전



“I’m back(내가 돌아왔다).” 1995년 3월 19일. 취업 준비에 한창 바쁜 시기였지만 이날만은 뉴스에 온통 신경이 쏠렸고 흥분됐다. 대학 시절 흠뻑 빠진 미국프로농구(NBA)의 최고 스타 마이클 조던이 이런 일성과 함께 복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약 1년 반 전 그가 갑자기 은퇴를 발표했을 때 느꼈던 상실감이 너무 큰 탓이었을까. 조던의 복귀 발표에 따른 행복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로부터 열흘쯤 후였다. 학교 도서관 옆 휴게소에 들렀다가 조던의 시카고 불스와 뉴욕 닉스 간 라이브 경기를 봤다. 당시 조던은 무려 55점을 올렸다. 옆에 있던 학생이 “와, 정말 인간이 맞냐”며 내뱉었던 탄성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스포츠 황제의 화려한 재기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조던은 이듬해부터 3년 연속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인기 스포츠 세계에서 압도적인 기량과 카리스마를 갖춰 여론과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없이 ‘황제’로 불리는 선수는 조던(56) 외에 펠레(79·축구) 타이거 우즈(44·골프) 로저 페더러(38·테니스) 정도가 있다. 펠레를 제외한 3명은 은퇴한 뒤 혹은 극도의 슬럼프나 부상을 겪은 뒤 세계 최고 자리에 다시 오르는 데 성공했다. 지난 24년간 쉽지 않을 거라던 황제들의 순차적 복귀와 정상 재등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다.

특히 지난주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우즈의 포효는 골프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뭉클함을 안겨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 성추문과 부상, 아마추어 수준으로 몰락, 다시 메이저대회 제패. 영광과 추락을 모두 겪은 뒤 오뚝이처럼 기사회생한 그에게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조던도 우즈의 우승에 대해 “지금까지 본 최고의 재기 사례”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정도는 약하지만 페더러의 행보도 경이롭다. 2000년대 테니스계를 평정한 페더러는 2012년부터 슬럼프에 빠졌고 2016년 무릎 수술을 받아 은퇴설이 무성했다. 격렬한 움직임으로 체력소모가 많은 테니스의 특성상 81년생 페더러가 되살아날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7~2018년 메이저 3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건재를 알렸다. 올해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2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역대 두 번째로 투어 100승 이상(101승)을 거둔 선수가 됐다.

공교롭게도 둘은 비슷한 점이 많다. 2000년대 우즈는 281주간, 페더러는 237주간 연속 세계 1위라는 해당 종목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종목이 달랐음에도 차원이 다른 기량 때문에 둘은 ‘누가 더 뛰어난지’에 대한 세간의 입방아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2010년대 초·중반 나란히 침체기를 겪었다. 키도 185㎝로 같다. 그래서 둘은 6세라는 나이 차에도 서로를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절친이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다시 정상에 발을 디뎠다.

모두가 끝났다고 했던 예상을 뒤엎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팬들은 우즈와 페더러의 또 다른 도전과 승리를 염원한다. 바로 최다승이다. 우즈는 마스터스 우승으로 메이저대회 15승,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 81승에 도달했다. 메이저는 잭 니클라우스의 18승, PGA 투어는 샘 스니드의 82승이 최다다. ATP 투어 대회 최다승은 지미 코너스의 109승이다. 앞으로 8승을 해야 하는 페더러보다 투어 1승, 메이저대회 3승만 남은 우즈의 기록 달성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 하지만 1년 전만 해도 우즈의 부활을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예단은 무의미하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페더러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 세 황제의 빛나는 귀환을 목도했고 두 황제의 마지막 도전을 지켜보게 됐다. 최후의 불꽃을 태우며 멋진 피날레를 준비하는 황제들을 보면서 그들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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